이 한 편의 詩

하일서경(夏日敍景) /구상

뚜르(Tours) 2023. 8. 20. 08:58

 

 

하일서경(夏日敍景)   /구상

 

 

1. 아침

 

산과 마을과 들이

푸르른 비늘로 뒤덮여

눈부신데

 

광목처럼 희게 깔린 농로(農路) 위에

도시에선 약 광고에서나 보는

그런 건장한 사내들이

벌써 새벽 논물을 대고

돌아온다.

 

2. 낮

 

`이쁜이'가 점심함지를

이고 나서면

`삽살이'도 뒤따른다.

 

사내들은 막걸리 한 사발과

밥 한 그릇과

단잠 한숨에

거뜬해져서 논밭에 들면

해오리 한 쌍이

끼익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난다.

 

3. 저녁

 

저녁 어스름 속에

소를 몰아

지게 지고 돌아온다.

 

굴뚝 연기와

사립문이 정답다.

 

태고(太古)로부터

산과 마을과 들이

제자리에 있듯이

 

나라의 진저리나는

북새통에도

이 원경(原景)에만은

안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