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가을비 /이고은

뚜르(Tours) 2023. 9. 26. 14:29

 

가을비  /이고은

 

창문 밖에 비가 찾아와 서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서성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마음을 흔듭니다

나는 또 그 비를 고스란히 받아줍니다

 

올봄과 무더운 여름을 지내놓고는

무슨 사연이 그리 많을까요

비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습니다

 

아, 멀고도 먼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얘기합니다

그동안 살갗이 데일 만큼

따갑고 시리었다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네 목젖이 울렁일 때까지 실컷 울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깨를 토닥이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줍니다

가끔은 이렇게 울어도 괜찮아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나와 두런두런 지난 얘기나 나누다가 가렴

비는 해맑은 웃음 지으며 또르르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