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우수 무렵 / 박재삼

뚜르(Tours) 2025. 2. 18. 20:22

 

 

우수 무렵  / 박재삼

 

입춘을 지나

우수(雨水) 무렵으로 오면

아직 분명히 나무는 벗은 채

찬바람에 노다지로 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어딘가 회초리를 맞아도

옛날 서당 훈장의 그것 같아

사랑의 물끼가 실려 있고,

멀리서 보면

아리랑이가 낀 듯하고,

조금은 이지럼증도 섞여 들더니

드디어 울음을 터뜨릴

기운까지 얻고 있는

한마디로

눈부신 경이(驚異)가 묻어 있구나.

 

- 박재삼,『해와 달의 궤적』(신원문화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