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이해인 수녀의 시는 왜 가슴을 울릴까?

뚜르(Tours) 2024. 8. 4. 09:56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 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며 자라는
고운 우리 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 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청청한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해인 수녀의 시 ‘말의 빛’입니다. 2002년 시집 《작은 위로》에 실린 작품이죠?

 

1945년 오늘은 수녀님이 강원 양구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원래 이름은 명숙. 생후 사흘 만에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명은 프랑스 루르드의 성녀 벨라데따에서 따왔습니다. 6.25 전쟁 때 아버지가 납북돼, 홀어머니 슬하에서 컸으며 경북 김천 성의여고를 졸업하고 성 베네딕도(Benedict·芬道) 수녀회에 들어갔습니다. 수도자 이름은 클라우디아.

 

수녀가 된 뒤 필명 ‘이해인(海仁)’으로 글을 써왔고, 1970년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법정 스님과의 종교를 뛰어넘는 우정으로도 유명하지요? 직장암에 걸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극복, 다른 암 환자를 돕는 활동도 펼쳐왔습니다.

 

수녀님의 시에선 화려한 수사(修辭)도, 기발한 연상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단순한 시어(詩語)들이 은은한 감동을 전합니다. 구도자로서 늘 수양하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겠죠? 그의 시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행동을 바꾸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감사, 사랑, 반성, 용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을 진솔하게 알려줍니다. 오늘은 수녀님의 시 한 편 더 감상하며 우리 가슴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침마다 소나무 향기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솔잎처럼
예리한 지혜와
푸른 향기로 나의 사랑이
변함없기를

 

찬물에 세수하다 말고
비누향기 속에 풀리는
나의 아침에게 인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온유하게 녹아서
누군가에게 향기를 묻히는
정다운 벗이기를
평화의 노래이기를

 

아침의 향기 / 이해인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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