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5801

겨울 뻐꾸기 /황금찬

겨울 뻐꾸기   /황금찬  새벽 4시나는 뻐꾸기 소리에잠을 깬다.그리곤 다시잠이 들지 않는다젊은 어머니와늙은 아들의 대화어머니는저보다 늙지 않았습니다.그래 너는 에미보다늙었구나.제가 어머니보다많이 더 오래 살구 있는걸요너는 이 에미의 가장 사랑하는아들이지늙어가는 네 모습이울고 싶도록 아름답구나어머니의 소원은뻐꾹새가 되는 것이었다.그래 잠든 도시의 새벽을깨우고 있다.사랑하는 아들아딸들아어미처럼 젊은 나이로는뻐꾹새가 되지 말아라.어머니는새벽 4시가 되면늘 우시고 있다.

이 한 편의 詩 2025.01.22

겨울밤의 기도 /정유찬

겨울밤의 기도  /정유찬  어떤 날은지워버리고 싶고어떤 날은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기고픈 하루, 또 하루 거리의 바람이날카롭게 지나는 창가에서나는 잠들지 않고추억의 날들을 봅니다 기쁘고 슬픈 날들행복하고 괴로웠던 날들사랑했고 미워했으며감사하고 원망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과그것을 지나온 느낌들은하늘 끝까지 각각의 울림으로 다가가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담기겠지요 때로는, 지나온 추억과 만들어갈 미래와존재하는 순간이 모두의미 없는 것들로 다가와도 또다시 빛날 태양과밤이면 뜨는 별들 아래서 사랑하게 하소서늘 감사하게 하소서그리고 무엇보다지난날들을 후회하지 않게하옵소서라며 가장 간절한기도를 올립니다

이 한 편의 詩 2025.01.21

눈사람 /황정숙

눈사람  /황정숙 ​​눈사람은 슬픈가발자국을 눈사람은 만들지 못해서사람의 발이 닿는 곳이 허공이라서 더 슬픈가동식물에 이름을 붙이는 그 눈사람을 노래하다진력이 난 발에는 어딘가 반항심 같은 순간이 들어있다눈사람은 바짓단에 정말로 숨겨 논 신발이 있다면눈사람의 신발이 사라졌다면눈사람은 하루 종일 서 있을 수 있는가아침이 오면 눈사람이 밤새 걸었던 발자국을 지웠다발자국이 없다면 눈사람 같은 눈사람이 아니어서혹은 전혀 눈사람이 아니어서 슬픈가눈을 뚫고 온 바람을 하얗게 뭉치는 세상어떤 눈사람은 잠자는 먹이를 잡고어떤 눈사람은 잠자는 먹이는 잡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눈사람은 발을 잃은 짐승일까그러나 눈이 녹으면 형체를 잃은 신이 아닌가러시아 어느 소수민족은호랑이의 발자국을 눈사람의 발자국으로 믿는다그래서 슬픈가..

이 한 편의 詩 2025.01.20

겨울 호수 /류인순

겨울 호수  /류인순하얀 눈 소복한 상류에고요 속에 잠긴 호수가그대의 따뜻한 품처럼하얀 숨결로 다가오고끝없이 펼쳐진 호수는얼음 녹은 물줄기 따라파란 숨결 머금고낯선 고독을 품고 있다잔잔한 호수반짝이는 윤슬은차마 얼지 못한 내 마음조용히 흔들어 깨우고겨울 호수는 그렇게멈춘 듯 흘러가며봄날의 조각들하나하나 꿰매고 있다.

이 한 편의 詩 2025.01.16

겨울 그리움 /오보영

겨울 그리움   /오보영그리운 이여혹시나 당신겨울이 오는 길목에 혼자 움츠리고 앉아시린 맘 달래고 있는 건 아닌지..언뜻 스쳐가는 당신위에내리쪼이는 이 햇살이 더 환하게 비추어따사하게 얼어있는 당신 몸과 맘을 좀녹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오보고픈 이여부디 다가오는 긴 겨울포근히 잘 지내다가우리내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봄날활짝 펴진 얼굴로더 반갑게 만날 것을 기약하며찬 기운에아련히 밀려오는 이 그리움을삭이기로 해요

이 한 편의 詩 2025.01.14

暴雪이 한 닷새쯤 쏟아지면 / 이준관

暴雪이 한 닷새쯤 쏟아지면   / 이준관 ​폭설이 한 닷새쯤 쏟아지면, 그리하여오직 하늘의 새의 길도 끊기면,한 닷새 무릎까지 외로움에푹푹 빠지며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도 좋으리.​간신히 눈 위로 남은빨간 山열매 두어 알로배를 채우고 가다 기진해서 쓰러져도 좋으리.눈 위에 누워너무나 아름다운 별에 흑흑 느껴 울어도 좋으리.​곰아, 너구리야, 고라니야, 노루야,쓰러진 나를 업어다 너희 이부자리에 뉘여다오.너희 밥솥에 끓는 죽을내 입에 부어다오.​폭설이 한 닷새쯤 쏟아지면나는 드디어 山짐승들과 한 食口가 되어도 좋으리.노루의 눈에 비쳐푸른 칡잎의 귀가 돋아나와도 좋으리.​사람들아, 내 발자국을 찾지 말아라.그 발자국은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이 쏟아지는 暴雪에덮이었으리니,이미 나는 눈이 길길이 쌓인 숲의 굴 ..

이 한 편의 詩 2025.01.13

바깥에 갇히다 - 정용화

바깥에 갇히다 - 정용화​​우리 집 현관문에는 번호키가 달려있다 세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면 가차 없이 문이​나를 거부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제대로 바깥에 갇히고 말았다​안과 밖이 전도되는 순간열리지 않는 문은 그대로 벽이 된다​계단에 앉아있는 30분 동안겨울이 왔다바람은 골목을 넓히려는 듯 세차게 불고추위를 모르는 비둘기는연신 모이를 쪼아댄다​내 것이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어디 문뿐이겠는가낡을 대로 낡아버린 현수막이바깥에 갇힌 나를 반성도 없이 흔든다​걸터앉은 계단이제멋대로 흩어지는 길 위의 낙엽이새들이 자유롭게 풀어놓은 허공이나를 구속하고 있는 바깥이라니!​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나는 지금 바깥이다​​​시집 『바깥에 갇히다』(천년의시작 , 2008) 중에서

이 한 편의 詩 2025.01.10

녹색 정원을 짓는 나무들 /박종영

녹색 정원을 짓는 나무들  /박종영한겨울 어두운 마음 안에풋살 같은 눈발이 희끗거리고산등성이 억새풀 늙은 꽃이고개 숙여 슬픔이다.솜털같이 무모하게 물기 머금고뛰어내리는 칙칙한 눈발,바람 진 동백숲의 고요도겨운 참에 안달이다.차가운 바람으로 흔들리는 겨울 산산빛 노을 한 줌으로 속삭이는 은밀한 숲,잠자는 나무 흔들어 언 뿌리 일깨우는동그란 나이테, 새로운 봄을 귀띔한다.산굽이 매몰찬 냉기를 이겨내며우리들의 봄날을 예비하는 나무들,무릇 겸허하게 선보일녹색정원을 짓느라 분주하다.

이 한 편의 詩 2025.01.09

그 겨울의 찻집에서 /배월선

그 겨울의 찻집에서  /배월선  풋풋한 허브 향기가 나는따뜻한 벽난로 옆에 낡고 오래 된 첼로와커피 한 잔이 있는그 겨울의 찻집에서 그 겨울의 찻집에 가면먼저 와서 기다리며 서성대는어떤 사람 만날 수 있으려나, 꿈에도 그립던 사람아주 부드러운 소설처럼 한 권의 표지가 되는내 기억 속의 사람 그 겨울의 찻집에 가서날이 흐릿한 오늘은꺼내어 읽어보고 싶다.

이 한 편의 詩 20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