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지갑 사랑 /하 제 헌 지갑 사랑 /하 제 당신이 건네준 새 지갑 받아들고주머니 속 헌 지갑 만지작거리다가만히 서랍 속에 넣고 말았습니다.새 지갑이 굴러다녀도 서운해 마세요.낡은 지갑 속엔 사랑 묻힌 이야기사진 속에 아로새겨 있기 때문입니다.그 사진 새 지갑에 옮겨 넣을 수 있어도손때에 쌓인 추억까지 담지 못할까 봐차마 바꾸지 못하였습니다.헤지고 때묻은 헌 지갑 열 때마다항상 웃고 있는 당신 사진 바라보면서영영 떼지 못할 정이 붙었나 봅니다. 이 한 편의 詩 2025.05.29
노인네 길다방엘 가신다 - 차승호 노인네 길다방엘 가신다 - 차승호길다방에 꿀단지라도 묻어 놓으셨나아침 일찍 논두렁 휘휘 둘러보고노인네 길다방엘 가신다. 길다방마담이 이쁜지 미스 문양이 이쁜지말본새도 신식으로바꾸고말씀뿐인가 이력 때 아니면 입지도 않던 양복에넥타이까지 접수시고개화청년 스타일로 함덕 읍내 길다방엘 가신다어머니랑 왜 다투셨유?싸우긴 누가 싸워, 쪽 팔린 소리 좀 자그매*해라 국물 싱거운 원두커피 노른자 띄운 쌍화차텔레비전 야구중계 걸쭉한 이바구모두 다 신문물이니길다방을 제물포쯤으로 여기시는 게 틀림없다수시로 외식을 해가며 신문물 접하는데 짬뽕쯤은 일도 아나지노인네 길다방에 가신다마담 손금 봐주고 회춘 하실랑가한 사나흘 휴가 내서 나락 떨어라이나는 중요한 약속 때문에 안되는 중이나 알구* 자그매 - 작작, 어지간이시집 .. 이 한 편의 詩 2025.05.26
오월에는 /송정숙 오월에는 /송정숙 사람들아오월에는 맨발로한포기 풀이 되자영롱한 이슬처럼맑음으로용기있는 사람이 되자한번도 다가오지 않았던 희망에게도멀리서 바라만 보던 행복에게도너그러운 웃음던져주자어느 모퉁이 온기없이 죽어간 이와잔바람에 흔들리며 사는이들을 위하여빈손이라도 녹색깃발처럼 흔들어주자 사람들아오월에는 마음열고한송이 꽃이되자부지런한 몸짓으로환한 얼굴 가꾸자슬픔으로 베어나던 눈물자욱안개속에 흐느적거리던 소망에게도고운 눈빛으로 바라보자시골 성당 고개숙인 이들불빛에 모여드는 풀벌레그들처럼 우리도 사랑을 품자 이 한 편의 詩 2025.05.25
바람과 흘러간 애인에게 /신미균 바람과 흘러간 애인에게 /신미균 문을 잘 잠궜는데손잡이가자꾸 달가닥거린다.누구냐고 소리쳐도 대답이 없고창밖을 봐도 아무도 없는데보이지는 않지만없지도 않은 것이가지도 않고 자꾸 자꾸내 안으로들어오고 싶은가 보다.안으로 들어와 봤자언제 그랬냐는 듯 눈 살짝 내리깔고앉아보지도 않고, 휭가버릴 거면서미안하지만내 속에 나만 있어서홀가분하고 참 좋다.너도나처럼혼자 놀아라.- '시현실', 2024 겨울호 이 한 편의 詩 2025.05.24
오월 어느 날 /목필균 오월 어느 날 /목필균 산다는 것이어디 맘만 같으랴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산딸나무 꽃처럼하얗게 내려 앉았는데오월 익어가는 어디쯤너와 함께 했던 날들책갈피에 적혀져 있겠지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바라만 보아도 좋을거 같은네 이름 석자햇살처럼 눈부신 날이다- '내게 말 걸어 주는 사람들', 시선사, 2021 이 한 편의 詩 2025.05.14
슬픈 악기 /이대흠 슬픈 악기 /이대흠 노래방에 가서건 결혼식에 가서건노래를 하려고 보면 꼭 생각나는 건서러운 곡조뿐이네기쁨을 말해야 하는데신나는 노래도 많은데몸속 어디에슬픔의 청이 숨어 있나- [코끼리가 쏟아진다],창비, 2024. 이 한 편의 詩 2025.05.09
놋그릇 /고영민 놋그릇 /고영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아버지가 쓰던놋그릇을 어머니로부터 받아왔다앞으론 이 그릇에 밥을 퍼 달라고아내에게 말했다아버지는 늘 아무 말 없이천천히 밥을 드시곤 했다말미엔 밥그릇에 숭늉을 부어 드셨다나도 아버지처럼말없이 밥을 먹었다숭늉을 부어 먹었다가끔은 몸 없는 아버지가 나를 통해밥을 먹는다고 생각했다같은 밥그릇 속에서 부자는 늙어갔다나는 점점 아버지의입매를 닮아갔다비워질수록치렁치렁 숟가락 부딪는소리가 났다―계간 《문학청춘》(2025, 봄호) 이 한 편의 詩 2025.05.05
봄비 / 고정희 봄비 / 고정희가슴 밑으로 흘러보낸 눈물이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오 그리운 이여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꿈꾸는 들판으로 달려나가자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이 한 편의 詩 2025.05.03
오월을 드립니다 /오광수 오월을 드립니다 /오광수 당신 가슴에빨간 장미가 만발한오월을 드립니다오월엔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겁니다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왠지 모르게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당신에게 좋은 일들이많이 많이 생겨나서예쁘고 고운 하얀 이를 드러내며얼굴 가득히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당신의 모습을자주 보고 싶습니다오월엔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왠지 모르게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당신 가슴에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오월을가득 드립니다. 이 한 편의 詩 2025.05.01
떠나는 4월 /운곡 오철수 떠나는 4월 /운곡 오철수 4월이 떠나려 합니다. 노랑 저고리 분홍치마훌훌 벗어던져 버리고왔던 길 되돌아 떠나려 합니다. 숨 가쁘게 피어올랐던꽃들이,4월의 꽃들이하나, 둘 스러져가고 골짜기를 들쑤시고구름처럼 피어오르던산 벚꽃들조차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십리 벚꽃길이 눈앞인데,꽃길 한번 걸어보지 못한 할머니남새 밭 풀 고르시는 호미 끝에서5월의 흙냄새가 폴폴 피어오릅니다. 이 한 편의 詩 2025.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