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기쁨
우리는 창조와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의 징표인 겸손한 사랑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강요하시지 않으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삶과 세상의 가장 미미한 존재들을
통하여 이를 드러내 보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온유는 하느님의 겸손을 보완합니다.
온유는 세상에서 하느님 현존을 드러내는 징표이고 겸손은 하느님과 만남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삶 안에서 하느님의 겸손한 현존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평범하고 적나라한 조건 안에서 그분을 발견하고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묶어주는 가장 진실된 끈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없고 하느님께서 우리 삶 안에서 침묵하신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온유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내세우거나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의 노예로 머무는 한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실
것입니다.
오로지 성령께서만이 그리스도의 자비와 고통이라는 열려진 돌파구를 통해
하느님의 온유하신 모습을 닮고 하느님의 질서에 들어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 강림날 "오소서, 성령님. 저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 드립니다.
돌같이 굳고 딱딱한 우리 마음이 성령의 온유하심으로써 변화하고 부드럽게 될 때
하느님의 목소리가 우리 마음 속에 다시 메아리쳐 울릴 것입니다.
성령께서만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발견하게 하시고
우리의 죄와 부족함의 결과인 가난과 불행을 인정하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경직과 완고함은 대부분의 경우가 가난과 불행에서 도피하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의무들과 생명을 건 투신들은 흔히 자신의 부족과 약함을
은폐하려는 데에서 그 동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의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엄격하고 완고한 자세의 '의인들'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거부하며
길들이려고만 합니다.
우리 자신의 가난에 눈을 뜨는 것은 절망적이고 우리를 암담하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악마가 개입하여 죄의 무게를 느끼게 하여 좌절과 자기 학대로 몰아 갈 때
이 가난은 하느님의 마음에서 넘쳐흐르는 자비와 온유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세상에는 구제불능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중대한 순간에 우리를 짓누르는 가난은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자비의 힘으로 구원에 부름 받은 인간 운명의 거대한 흐름에
합류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인간적 불행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한 부분과 연결됩니다.
가난은 우리 존재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우리를 양육하는 음식과 같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가난이 하느님의 자비를 부른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우리 안에 현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가난과 하느님의 자비는 어떤 의미에서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상호 작용합니다.
여기에 은총의 신비가 있으며 성령만이 우리에게 이 신비를 계시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신비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처럼 하느님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가난은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기 위해 요청되는 길입니다.
성령께서는 가난을 싫어하거나 도피하기보다 이를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가난을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과 그분의 완덕에 비기려는 교만한 사람이 되기보다 어린아이
처럼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진리의 길로 이끌어주시도록 청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가난과 불행을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의 충만을 부르는 텅빈 공간으로, 그리고 하느님을 영접할 수 있는 비어 있는
존재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넘쳐 흐르는 강물이 될 것이니 너는 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라"(역자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이나 허영심
또는 자만이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 은총의 큰 신비입니다. 우리의 불행과 가련함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분과 만남을 이루어주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분의 능력이 드러나기 위해 우리의 약함을 자랑으로 여기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우리의 삶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과 일상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약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방해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나게 하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틈새를 만듭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능력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상처를 통해 흐르는 것처럼
이 틈새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쉼 없이 흐르도록 합시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예수님의 마음」에서
자크 드라포르트 신부 지음 / 이창영·바오로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