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눈이 옵니다. 바람도 제법 있습니다. 2층 창 너머로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다 어느덧 온 허공을 하얀 꽃잎으로 가득 채우며 춤추듯 흩날리는 눈! 방안은 따뜻하고 개들은 평화롭습니다. 산막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 같은 아름답고 조용한 날이면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송OO 선생님! 미술을 전공하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십수년 전 기천문의 도반(道伴)으로 만나 같이 집짓고 가꾸며 살다가 남편 따라 지방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산중 도장의 기둥에 새긴 조각이며 그림들… 분당 도장에서의 새벽 수련… 부안에서의 바지락 죽! 그녀와의 인연은 이렇듯 깊습니다.
수년 전 그녀가 지방으로 직장을 옮긴 후 이곳의 오두막과 땅을 처분했으면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도반 중 어떤 분이 인수코자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인수할 입장이 아니었지요. 그렇게 또 몇 해가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던가, 문득 그 오두막과 땅을 인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송 선생 남편의 정치입문 실패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원인(遠因) 중 하나이긴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꼭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것을 인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인수할 의사가 있고 인도할 의사가 있으니 값만 맞으면 되는 일.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중개인을 넣든가 흥정을 할 일이었지만 명색이 도(道)공부를 한다는 사람끼리 세속적인 거래를 할 수는 없었지요. 아니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투입원가, 청산(淸算)가격, 교환가격, 대체(代替)가격… 소위 물건 값을 매기는 경제학적 이론들을 총동원하고 정황조건까지 감안한 인수가격을 정한 후 전화를 드렸습니다.
“송 선생님! 이곳 선생님 집과 땅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권 사장님이 알아서 주시지요.”
“그럼 제가 드리는 대로 받으십시오.”
“네, 그런데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이것이 우리가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나눈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이후 저는 제가 생각하는 값을 적절한 시차로 지불했고 거래는 끝났습니다. 송 선생의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이 한마디에 저는 제가 내정했던 인수가격을 상당히 올려야 했습니다. 진정한 고수(高手)는 송 선생이었고 저는 하수(下手)였습니다. 무수(無手)가 상수(上手)였던 것입니다.
몇 해 전 집 거래를 하던 중 복비(중개 수수료) 이야기가 나와 중개인에게 말했습니다.
“복비는 내가 주는 대로 받으시지요!”
별 미친 사람 다 보았다는 듯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정한 대로 주셔야 합니다!”
단언코 말하거니와 나는 절대로 그가 부른 복비를 그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산막의 집과 땅은 아직도 송 선생 것입니다. 적어도 제 마음속으로는 그렇습니다. 언제든 원하시면 다시 돌려드릴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이야기할 것입니다. “송 선생님! 너무 많이 주시지는 마세요.” 라고.
권대욱 <연우포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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