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의 빈손 / 오정국 저기에 무엇이 담길지는 생각지 말자 빈손이다 아름드리 팽나무 밑의평상, 거기에 무릎 꿇고 앉아공중으로 두 손을 받들어 올리는노인네, 움푹 팬궁기의 눈빛으로 올려다보는하늘 빈 그릇이다 백발의 저 할아비에겐 식솔이 없다 비로소경전도 주문도 털어 버렸다 다만,오늘 하루의 햇빛에게만예를 갖추겠다는 듯 멈춰진 손바닥의순간, 순간들 비바람이 밀려온 건 그다음의 일이다해가 서쪽 산으로 넘어가고구름의 아랫배가 붉게 물든 것도 그다음의 일이다 빈손이 쥐고 있는빈손 어두워지지 않고는깊어지지 않는밤, 이윽고 빈손이 놓아 버리는빈손- 오정국,『파묻힌 얼굴』(민음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