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마음을 왜곡시키고 조종하려는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자신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의 판단과 의사결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외부의 영향에 의해 훨씬 쉽게 조정될 수 있다. 그러한 일들은 바로 우리가 눈을 뜨고 있을 때 일어난다.
프라이밍,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영화 「인셉션 2」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코브의 새로운 임무는 피셔가 사이토를 처음 만났을 때 사이토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느끼게 해서 조금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사이토는 코브와 한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코브는 호텔에 도착한 피셔가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따라 들어간다. 그러고는 풀어진 구두끈(작전상 이미 풀어놓은 것)을 다시 묶는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따뜻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잠깐만 들어달라고 피셔에게 부탁한다. 피셔는 처음 본 사람의 부탁이지만, 잠깐 종이컵을 들어준다.
잠시 후 스카이라운지의 문이 열리고 코브에게 종이컵을 다시 넘겨준 피셔는 사이토를 만나러 라운지로 걸어 들어간다. 사이토를 만난 피셔는 사이토가 참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피셔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이토에게 좀 더 양보하기로 한다.
피셔의 계약 내용을 확인한 비서실장은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경호원들에게 사이토와 코브를 추적하도록 지시한다. 하지만 오늘따라 경호원들의 발걸음은 느리고 무겁다. 코브의 팀원인 아더는 이미 한 시간 전부터 경호원들의 휴대전화에 문자를 발송하고 있었다. 문자 메시지에는 다섯 개의 단어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었다. 그중에서 네 개의 단어를 이용하면 완성된 하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이상한 문자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자를 받으면 문장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아더가 발송한 문자의 3분의 1에는 노인과 관련된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이토와 코브는 느린 속도로 쫓아오는 피셔의 경호원들을 여유 있게 따돌린다. 결국, 코브의 팀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가상의 영화 「인셉션 2」는 예일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존 바지John Bargh 등의 실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들이 『사이언스Science』와 『사회 및 성격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실험을 「인셉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실제 연구에서 실험참여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실험실로 이동하면서 잠깐 들고 있었던 컵에는 따뜻한 커피가 담겨 있거나 차가운 아이스 커피가 담겨 있었다. 결과는 따뜻한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아이스 커피가 든 차가운 컵을 들고 있던 사람들보다 같은 대상을 더 좋게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물리적으로 따뜻함을 느꼈던 사람들은 차가움을 느꼈던 사람들보다 실험참여의 대가로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을 타인에게 양보하는 경향이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따뜻해지면 심리적으로도 따뜻해져서 타인을 더 좋게 평가하고,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더 이로운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노인과 관련된 단어가 포함된 다섯 개의 단어들 가운데 네 개를 이용해서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만드는 과제를 실시했다. 그런 다음 실험참여자들이 실험실을 나와서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가야 하는 엘리베이터까지 얼마나 빨리 걷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노인 관련 단어를 이용해서 문장을 완성했던 사람들이 중립적인 단어를 이용해서 문장을 만들었던 사람들보다 걸음걸이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과 경쟁을 프라이밍하는 사회의 미래
존 바지 등의 실험에서 사용한 기법이 바로 ‘프라이밍priming’이다. 따뜻함을 프라이밍하거나 노인 관련 지식을 프라이밍한 것이다. 프라이밍은 기억에 저장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프라이밍되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프라이밍 되었는지도 모른다. 프라이밍된 생각이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른다. 프라이밍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바지 등의 연구에서도 실험참여자들은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이 컵에 담겨 있던 커피 온도나 자신이 완성한 문장에 들어 있던 노인 관련 단어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돈과 경쟁,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단어다. 상징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거의 매일 이 두 단어와 함께 살아간다. 돈과 경쟁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 지속해서 프라이밍되는 것이기도 하다. 돈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과 정보가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고, 경쟁은 우리가 속한 거의 모든 조직에서 강조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돈과 경쟁적 가치관을 지속해서 프라이밍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경쟁은 사실 나쁜 것이 아니다. 돈은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해주고, 건강한 경쟁은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촉진한다. 문제는 돈과 경쟁이 프라이밍되었을 때 변화되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이다.
몇 가지 연구를 살펴보면 돈이 프라이밍될 경우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관계를 지속하려는 욕구가 줄어든다. 혼자 놀고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해 좋아하는 것은 증가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더 많은 물리적 거리를 두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어려울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돈이 지속해서 프라이밍되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부담스러워 하고, 혼자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관계의 단절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그런 사회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경쟁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쟁은 더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망가뜨릴 뿐이다. 경쟁이 프라이밍되면 사람들은 상대를 믿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믿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경쟁적 가치관이 프라이밍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불신은 사람들의 관계를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적대감은 쉽게 상대방에 대한 공격 행동으로 이어진다.
악마가 되느냐, 천사가 되느냐
돈은 고립을 유도하고 경쟁은 불신을 일으킨다. 따라서 돈과 경쟁이 지속해서 프라이밍되는 사회의 미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하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돈과 경쟁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를 프라이밍시키는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무엇이 주로 프라이밍되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나는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 프라이밍되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 사회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주로 프라이밍되느냐에 따라 고립된 개인들이 서로 불신하면서 사는 사회가 될 수도 있고, 신뢰 속에서 행복하고 다양한 인간관계가 지속되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 프라이밍 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미래도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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