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면서 주위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은 커서도 계속 마음속 깊은 곳에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부모, 형제, 친구, 스승들로부터 자신의 외모나 능력, 성격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상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처가 많은 경우, 남보다 배나 노력하여 대단한 성공을 이룩하기도 하지만, 뜻밖에도 그렇게 성공한 후에도 그들의 가슴에는 끊임없는 열등감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리더의 가슴속에 내재한 치유되지 못한 열등감은 리더십 잠재력에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걸기 쉽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큰 상처를 준다.
프랑스인들은 유달리 민족적 자존심이 세고, 과시욕이 많으며, 외형적 변화에 민감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상처 입은 자존심에서 비롯된 은근한 민족적 열등감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19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에 필적할 나라는 영국, 스페인, 러시아밖에 없을 정도로 프랑스의 기세는 대단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급부상한 이웃 나라 독일에 의해서 프랑스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졌다(독일과의 첫 전쟁에서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생포되는 치욕을 시작으로 하여 2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영국과 신흥 강대국인 미국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두 번이나 멸망할 뻔 했었기 때문에, 영어권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상처 입은 자존심에 영 기분이 나쁜 것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어는 표준 세계 외교 언어로 통했는데, 이제는 영어에 밀려 버린 데 대한 상처도 크다. 그래서 미국 관광객들이 프랑스에 여행을 가면 영어를 뻔히 알아 들으면서도 못 알아 듣는 척하는 프랑스인들 때문에 골탕을 먹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현재보다는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따지게 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른 선진국들에게 뒤지기 싫으니까 열심히 바꾸면서도 정말 중요한 생각의 변화, 내면적 본질의 변화는 없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적극적으로 외국 문화를 배우려 하거나, 자기와 다른 외국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끌어안고 잘 어울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프랑스인들 스스로도 이러한 모습을 버리지 않으면 21세기의 새로운 프랑스는 없다고 자성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쓸데없는 열등감은 한 국가의 삶의 자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열등감이란 결국 상처 입은 교만이며, 이것은 리더십 킬러로 작용하는데, 프랑스인들의 모습 속에서 은근히 우리 한국인의 심리가 반사되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홍 지음 <거인들의 발자국>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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