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빚
 ’지금이 마침 밤 새로 1시. 촌(村)에서는 요때면 첫닭이 우오. 이 첫닭 우는 소리를 기다려 오늘 밤도 시방쯤 마악 우물에 가서 (그 노인이…) 손수 길어 오신 정화수를 집 뒤 울안에 모신 단 앞에 고여놓고 두 손 합장, 북두칠성을 우러러 정성스러이 치성을 드리고 계실 게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우리 여섯 남매를 위하여.’ 소설가 채만식의 수필 ’어머니의 슬픈 기원’ 중 한 구절이다. 비슷한 풍경을 천주교 정의채 몬시뇰로부터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함께 정 몬시뇰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영세(領洗)를 몇 주 앞두고 "죽음에 대한 교리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며 고민하던 그는 결국 문제를 해결한 후 자택으로 정 몬시뇰을 초청했다. 그런데 대문을 들어서자 잘 보이는 곳에 물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박경리는 "저뿐 아니라 우리 딸도 귀한 세례를 받는데, 정성을 들이느라…"라고 말했다. 정 몬시뇰은 순간 기가 찼지만 그 갸륵한 정성을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채만식도 같은 수필에서 ’그 지극한 정성과 갸륵한 애정 앞에 조그마한 미신이 무슨 문제가 되오’라고 덧붙였다. 새벽의 기도는 나에게도 낯설지 않다. 시골 계시던 할머니가 상경할 때면 새벽잠을 설쳤다. 같은 방을 쓴 까닭이다. 사위는 아직 깜깜한데 어디선가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잠 많던 시절에도 귀에 몹시 자극이 됐던 모양이다. 덜 깬 눈으로 둘러보면 무릎 꿇고 염주 알을 굴리며 뭔가 웅얼웅얼하는 할머니의 실루엣이 보였다. 딱히 정통 불교도 아닌, 채만식의 노모(老母) 비슷한 치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꿀 같은 새벽잠을 설친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지만 그 새벽의 기도 풍경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았다. 어려운 순간엔 든든했고, 구부러지려는 마음을 펴줬고, 가지 말아야 할 길목에선 발목을 잡았다. 그 느낌을 꼬집어 무어라 명명(命名)할지 한동안 애매했다. 그 숙제를 풀어준 것은 고(故) 옥한흠 목사였다. 2010년 부활절을 앞두고 만났을 때 그는 병(病)이 깊었다. 그렇지만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지금도 고난 주간 특별 새벽 기도회에서 많은 분이 저를 위해 기도해 준다"며 "우리 모두는 ’기도의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라 했다. 그때 숙제가 해결됐다. ’기도의 빚’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빚쟁이다. 부모든, 조부모든, 친지·친구 누구라도 나를 위해 기도해준 이가 있다. 아니 일찍이 모든 종교의 창시자도 우리를 위해 기도했다. 둘러보면 세상은 화나는 일투성이다. 언제든 점화할 준비가 된 마음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곧이곧대로 살지 말고 ’융통성’을 부리라는 유혹도 이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빚 위에 또 빚을 얹는 격이다. ’기도의 채무’는 무섭게 불어난다. 거꾸로 ’기도의 빚’은 ’기도의 힘’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북풍한설(北風寒雪)에도 따뜻한 아랫목에서 몸을 데운 사람은 덜 춥고,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쐰 사람은 덜 덥듯이 세상 견뎌 갈 힘을 준다. ’빚=힘’인 오묘한 경지다. 올해도 이미 한 달이 흘러갔다. 이제 남은 건 열한 달이다. ’빚 갚고, 힘내야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김한수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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