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왕자 계찰이 북방의 서국(徐國)에 갔을 때였다.
서국의 왕이 계찰이 차고 있는 검(劍)을 몹시 갖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계찰은 왕의 뜻을 모르는 체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검을 아껴서가 아니라
당시의 예법에 따라 사신은 검을 패용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찰이 사신의 임무를 모두 마치고 오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서국에 다시 들렀을 때
검을 갖고 싶어했던 서국의 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왕의 묘를 찾아가 무덤 앞의 나무에 검을 걸어놓고 떠났다.
계찰의 수행자가 물었다.
“서국 왕은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 저 칼은 누구에게 주시는 겁니까?”
그러자 계찰이 대답하였다.
“서국 왕이 검을 갖고 싶어하던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 검을 주기로 결정했었다.
다만 그 결정을 남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이 들었건 안 들었건 결정은 결정이다.
그래서 나는 내 결정을 지금 실행한다. 단지 그뿐이다.”
드러내 놓고 한 약속도 안지키는 세상이다.
그것은 지금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익 추구로 날이 새고 지던 춘추전국시대, 계찰의 시대에는 더욱이나 약속을 번복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시대야 어찌되었든 거짓 약속이 난무하는 한가운데에서 대장부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킨다.
하물며 남과의 약속이야 어찌 지키지 않으리.
남과의 약속 이전에 자기와 약속하고, 자기와의 약속을 하늘과의 약속처럼 여기는 정신,
계찰의 이런 정신은 그를 만나는 사람에게도 개운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는 자기에게 굴러 들어온 왕위까지 사양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오나라에서 가장 현명하고 덕 있는 자로 인정하였다고 한다.
김정빈 지음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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