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악가가 무대를 사뿐 걸어가 지휘자 뒤에서 고개 떨군 남성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관객석을 보게끔 돌려세웠습니다. 남성의 일그러진 얼굴이 시나브로 환하게 바뀌었습니다.
1824년 오늘(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음악회’. 청력을 완전히 잃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초연하는 무대였습니다. 연주자 수를 가까스로 채웠고, 리허설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작한 공연에서 청력을 완전히 잃었던 베토벤은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트 뒤에서 보조 지휘자로 연주자들의 몸짓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토벤은 연주가 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알토 솔로를 맡았던 카롤리네 웅거 덕분에 기립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합창 교향곡’이란 별칭이 붙은 작품번호(Op.) 125 교향곡 9번은 이렇게 세상에 선보여, 지금 ‘인류 최고의 음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합창’은 베토벤이 22세 때 독일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를 읽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르며 곡을 붙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 32년 만에 결실을 맺은 작품입니다. 서른 살 때 교향곡 1번을 완성했으니 이보다 8년 전에 꿈꾼 작품이지요. 베토벤은 1817년 런던교향악협회의 작곡 의뢰를 받고, 7년 동안 온 힘을 쏟아 최초의 꿈을 최후의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특히 교향악에서 송가 합창이 빛나는 4악장은 나날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처음엔 로시니 풍의 오페라가 유행하던 빈 대신에 베를린에서 작품을 공개하려고 마음먹었지만 후원자들의 탄원서 때문에 마음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원체 대곡이다 보니 악단을 구성해서 연습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운명은 사람에게 인내할 용기를 준다”고 믿고,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였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가들이 ‘합창’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바그너는 도서관의 악보를 필사해서 연구하며 “베토벤이 현대의 악기를 본다면 이렇게 악보를 고칠 것”이라며 수정했고 1872년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선보였습니다.
‘합창’은 평화와 감사의 음악으로 자리 잡습니다. 1955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이 재건될 때에도, 1981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재건립 때에도 ‘합창’이 청중에게 감격을 선물했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동서독 단일선수단은 국가 대신에 이 곡을 사용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동서독과 연합국의 오케스트라 멤버로 구성된 교향악단으로 ‘합창’을 연주했습니다. 이듬해 독일의 재통일 때 쿠르트 마주어는 1981년 때처럼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을 지휘해 ‘합창’을 통일 전야 축전곡으로 연주했습니다. ‘합창’은 유럽연합의 공식 상징가로도 선정됐고,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베토벤 자필 악보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베토벤의 ‘합창’에는 빠져 있지만, 실러는 ‘환희의 송가’에서 “원한과 복수는 잊어버리고, 죽이고 싶은 원수라도 용서를 베풀라. 원수가 눈물에 짓눌리게 하지 말고, 후회에 갉아먹히게 하지도 마라”고 노래합니다. 베토벤은 작곡가로서 청력을 잃는 ‘운명’을 저주하며 무릎 꿇는 대신에 자신의 소명을 되뇌고 용서와 감사, 환희로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고요.
혹시 작은 것에 화내고 맹목적인 것에 분개하고 있지 않나요? 마음속으로 불운을 원망하거나 과거를 자책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베토벤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베토벤처럼 운명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감사와 환희를 느낄 수는 있겠지요? 오늘 ‘합창’이 세상에 나온 날, 환희의 소리를 들으며 그 마음에 전염되는 것은 어떨까요?
이성주 기자
원문기사 보기 : https://kormedi.com/2716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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