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상식

사적계시헌장(1) /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뚜르(Tours) 2007. 6. 26. 13:54

 

다음은 평화신문에 2회 연재된(916-917호)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조규만 주교의 계시헌장 지상

강좌의 내용이며 평화신문의 이연숙 기자가 정리한 글을 옮긴 글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은 제4회기 때인 1965년 11월 18일 반포되었습니다.

 

계시 헌장 해설

조규만 주교(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다. 계시종교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직접 알려 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하느님께서 구약성경에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또 여러 사건을 통해 자신이

누구신지 알려주셨고,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결정적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

하는 아버지임을 알려주셨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계시헌장」 1항).

계시헌장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이 지성을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계시로

모든 사람이 오류 없이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이성을 통해 알게 된 그리스인의 신과 계시를 통해 알게 된 야훼 하느님에 대한 이해는 다르다.

 

▨ 그리스 철학자들의 신

 

그리스인은 신화를 통해 신을 인식했으며 그 신은 인간적이다.

이 세상은 신들이 조정하는데 어느 한 신이 조정하기 어려워 여러 신들이 각자 역할을 맡는다.

그 신들은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 운명을 좌우하는 힘이다.

이에 대해 크세노파네스는 인간화된 제신들을 비판하고 영의 존재인 신을 강조, 추상적 개념으로 이끈다. 이러한 신 개념은 신화의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후 400여 년 지나 신은 존재 자체로 인식된다. 플라톤은 신을 알 수 있고, 변하지 않고, 필연적이고, 불멸하는 것이라며 선 자체를 신으로 본다.

플라톤에게 선한 것, 선 자체는 지식과 진리의 원천으로 사물에 그 존재와 본질을 주는 것이다.

하느님 계시 목적은 인간과 친교, 인류 구원이다.

 

▨ 계시의 절정

 

예수 그리스도 부활은 하느님 계시의 절정이다.

 

예수 부활은 하느님 편에서 볼 때, 하느님이 누구이고 어떤 분인지 결정적으로 알려준다.

예수 편에서 보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살아생전에 한 말씀이 모두 옳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드러낸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왔지만 하느님 아들로 알아본 이는 소수다. 요르단강 세례, 거룩한 변모 등 계시

사건이 있었지만 결정적 사건은 부활사건이다.

예수 부활은 인간 편에서 볼 때, 구원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드러낸다. 구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이스라엘 사람에겐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탈출하는 해방이지만 예수에겐 하느님 나라이고, 교부 시대에는 지복직관(至福直觀) 등으로 표현했다.

예수 부활을 통해 구원은 이 세상의 웰빙이 아닌 죽음을 건너 뛴 영원한 삶으로의 부활이 됐다.

「소용없는 하느님」(샤를르 달레 저)이란 책에서 하느님은 소용없는 분이라고 말한 것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도 살아간다. 우리는 꽃이 없어도, 아름다운 그림이나 음악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꽃과 그림, 음악이 있기에 우리 삶은 더 풍요로울 수 있다. 이는 통째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마찬가지로 부활이 없다고 해서 살아가지 못하는 게 아니기에 부활은 하느님께서 통째로 주신 선물이다. 하느님 뜻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계시이며, 부활이야말로 결정적 계시인 것이다.

 

계시에는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가 있는데 사적 계시는 공적 계시의 보충이나 보완이 될 수 없다. "새롭고 결정적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계시 헌장」 4항).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신다'라는 표현을 보자.

시한부종말론을 얘기하며 그리스도 재림(再臨)을 예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재림은 주님이 안 계신다는 얘기다. 재림하기 전까지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황청 문헌은 재림 대신 '영광스럽게 나타나신다'는 표현을 쓴다. 하느님은 사람이 있는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성체 안에 계시고 나중에 하느님 아들 모습으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는 것이 빠루시아(parusia)다.

 

▨하느님 체험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를 보면, 천주교는 주지 주의적이어서 주로 이성ㆍ 지성에 호소하는 반면

개신교는 주의 주의적이라 주로 감성에 호소한다.

우리는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힌 인간이 된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성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갈증을 느끼는 것이 바로 영적 체험이다. 그래서 사이비종교로 이탈한다. 신흥종교

신자 상당수가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G.하센 휫틀은 현대신학의 위기가 인격적 하느님에 대한 신앙

체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한국교회에서 사적 계시가 심각하게 문제된 적이 있고, 아직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적 계시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 체험의 한가지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잘못된 영적 체험에

대해 그릇된 신앙관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고 경고했다.

상주 데레사에 대해선 1957년 당시 관할권 자였던 대구교구장 서정길 주교가 공적으로 금지 조처를 내린 바 있다. 나주 율리아 문제에 대해선 1998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가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정통신앙 가르침에 위배되고 사적 계시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최창무 대주교도 금지 조처를 내렸다.

 

하느님 체험은 범위가 매우 넓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 예언자들이 체험했던 신현 사건, 예수 제자들의 예수 부활 체험,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성모 발현 사건 목격 체험, 성인들의 개인 신비 체험,

한 인간의 사건 등 모두 포함한다. 하느님 체험은 신비 체험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초월성에 기인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감지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초월성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만일 네가 이해했다면, 그분은 이미 하느님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당신의 생각에 속았을 뿐이다."

 

성경과 성전은 하느님 체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예수 부활 체험 이외에도 수많은 영적 체험 사례들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영적 체험 가운데 사적 계시에 국한해본다. 사적 계시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고, 다른 영적 체험들을 대변할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