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16 11:16:21
가을이 깊어갈 때 낙엽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면 왠지 우리들의 마음도 쓸쓸해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 하나 부여잡은 것 없이, 허망한 손짓만을 한 것 같은 이 계절에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얼마 전, 전 일본 열도를 울린 (우동 한 그릇)이라는 소설에 실린 이야기이다.
소설은 배경은 2차 대전 직후 일본 북해도의 북해 시다. 북해 시에는 북해정이라는 유명한 우동집이다.
섣달 그믐날이면 이 우동집은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섣달 그믐날에 우동을 먹는 것이 일본인들의 풍속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의 상흔이 아직도 곳곳에 짙게 깔려 있던 어느 섣달 그믐날 밤이었다.
오전부터 붐비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종업원도 다 퇴근한 밤 10시 문 닫을 시간이었다. 북해정 우동집 안으로 누군가가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왔다. 구호물자인 듯 싶은 낡은 검정색 코트를 걸쳐 입은 중년여인과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 둘이 머뭇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중년여인이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조그맣게 물었다. "저어, 우동한 그룻만 주문해도 되나요?"
주인 여자는 그들이 우동을 먹으로 왔다는 사실에 놀라 그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아이들까지 세 사람인데 우동한 그릇이라니■. 순간 주인 여자의 얼굴에 의미 있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짐짓 명랑한 목소리로 주방에 있는 남편을 향하여 소리쳤다.
“우동 한 그릇!”
밖을 내다보던 남편도 얼른 눈치를 채고 커다란 그릇에 우동을 하나 가득 담아서 내보냈다. 세 사람은 한 그릇의 우동을 앞에 놓고 부지런히 먹기 시작했다. 그 가족은 순식간에 우동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몹시 고마워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인 여자는 밖까지 따라나가 그들은 전송해 주었다. 주인 여자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또 한해가 지나고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북해정 우동집은 이 날도 역시 하루 종일 부산했다. 그리고 밤 10시, 가게문을 닫으려는 순간에 작년에 왔던 그 중년여인이 아이들을 앞세우고 급하게 들어섰다. 그들은 이번에도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다. 그들을 기억해낸 주인 여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주방에 있는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우동 한 그릇!”
주방에서 밖을 내다보던 그녀의 남편이 빙긋 웃으며 큰 그릇에 우동을 넘치도록 담아 주었다. 맛있게 우동을 먹은 그들 가족이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도 주인 여자가 밖까지 따라나가서 그들을 전송해 주었다.
“우리 집에 와 줘서 고마워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났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 북해정 우동집에 또 그 가족이 찾아왔다. 우동집 주인 내외도 이제는 은근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의 표정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그 중년여인이 두 개의 손가락을 펴 보이며 우동을 주문한 것이다. 어쩐지 목소리에도 힘이 있어 보인다.
“아주머니, 우동 두 그릇이요.!”
가득 담긴 두 그릇의 우동을 아이들과 함께 먹던 중년여인과 두 아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주인 내외는 우연히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방의 남편도 주인 아줌마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가족은 사업 실패와 가장의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래서 그 가족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이 들었다. 그런데 섣달 그믐날만 되면 아이들이 우동 먹기를 소원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는 가난한 살림에 보태려고 방과후에는 저녁 내내 신문을 돌리곤 했다. 그런 아이들의 소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섣달 그믐날에도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아무리 뼈빠지게 일을 해도 우동 사 먹을 여유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날을 위해 일 년 내내 푼푼이 돈을 모았다. 그런데도 그 돈은 겨우 우동 한 그릇 값밖에는 되지 못했다. 또한 밤이 늦어서야 각자의 일을 끝낸 그들 가족이 다 모일 수 있었다.
그런 처지인지라, 그들은 밤늦게서야 우동집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밤거리를 달려오면서 그녀는 우동집이 벌써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혹시 한 그릇이라고 팔지 않는다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동집 주인 내외는 너무나 친절했다. 한 그릇 값에도 세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우동을 듬뿍 담아 내 주는 주인 아저씨와, 밖까지 따라나와 전송해 주는 안주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둘째아이가 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글짓기를 했다고 했다.
“우리는 외로웠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가족뿐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아픔이나 가난에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우동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내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 너무나 친절했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
세상엔 너희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나도 이 다음에 우동집 주인이 되겠습니다. 우동집을 하면서 우리 집에 오는 가난한 손님들을 그 아주머니처럼 반갑게 맞아 주겠습니다.
이 소년의 글은 일본 열도를 울렸고, 일본 국회를 감동시켰다.
그 다음 해 섣달 그믐날이었다.
우동집 주인은 오전부터 이 식구들이 올 것을 기대했다. 식탁 한 자리에 예약석이라고 써 붙여놓고 기다렸지만 문 닫을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 섣달 그믐날도 주인 내외는 하루종일 예약석을 비워둔 채 이들을 기다리다 문을 닫았다. 그 다음 해도 또 그 다음 해도 십년이 가깝도록 북해정 우동집에 세 모자를 기다리는 예약석은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들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어느 눈 오는 겨울 북해정 우동집에 청년 신사 두 사람과 중년 후반의 여인이 들어섰다. 그들은 우동집 주인에게 예전에 베풀어준 우동 한 그릇에 대한 고마움과 주인의 친절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아들은 장성해 큰 아들은 의사가, 둘째는 은행원이 되어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주는 한 마디의 말은 사막에서 꽃을 피우는
기적을 낳는다.
**정태기 교수/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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