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왕대) >숙종실록 >숙종 39년(1713년) >숙종 39년 4월
조지운(趙之耘)
도감 제조(都監提調) 이이명(李頤命) 등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니, 어용(御容) 화본(畫本)을 출초(出草)하는 일을 위해서였다. 임금이 익선관(翼善冠)·곤룡포(袞龍袍) 차림으로 나와 있는데, 먼저 일전에 기초(起草)한 이본(二本)을 어좌(御座)에 걸었다. 여러 신하들이 들어가 초본(草本)을 본 뒤에 화공(畫工) 진재해(秦再奚)도 따라 들어가 그림 그리는 도구를 앞에 펼쳐 놓고 유지(油紙)를 가지고 초본(草本)을 개출(改出)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품지(稟旨)하여 진재해와 함께 모두 앞으로 가까이 가서 바라보며 각각 의견으로써 진재해를 일깨워 주었는데, 김진규(金鎭圭)가 더욱 특별히 주의(注意)하였다. 조태구(趙泰耉)가 의자(椅子)에서 내려가 평상(平床)에 앉아서 바라보기에 편리하도록 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이명(李頤命)이 2본(二本)을 정사(精寫)하여 한 벌은 대내(大內)에 봉안(奉安)하고 한 벌은 강화(江華) 장녕전(長寧殿)에 봉안하되, 장녕전에 봉안된 구본(舊本)은 그 즉시로 세초(洗草)16620) 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나의 의사도 또한 그러하다.”하였다.【뒤에 임금이 한 벌은 대내(大內) 선원전(璿源殿)에 보관하라고 분부하였다.】 임금이 내시(內侍)에게 내장(內藏)되어 있는 을해년16621) 에 조세걸(曺世傑)이 그린 본(本)을 가져다가 여러 신하들에게 보여 줄 것을 명하였다. 모두들 그것이 미진(未盡)하다고 말하니, 임금이 도로 그대로 가져다 넣어두라고 명하였다. 이이명(李頤命) 등이 다른 화사(畫士)와 방외(方外)의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을 불러 재능을 시험하여 그림 그리는 일에 참여토록 할 것을 청하고, 또 무진년16622) 조지운(趙之耘)의 전례에 따라 전(前) 현감(縣監) 정유승(鄭維升)을 감조관(監造官)에 차임하여 바로 녹봉(祿俸)을 주어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함께 의논하도록 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허락하였다. 진재해가 초본(草本)을 완성한 뒤에 여러 신하들이 모두 ‘전본(前本)에 비해서 훨씬 낫다.’고 말하였다. 이이명이 이 본(本)에 의거해서 초본(綃本)에 옮겨 그려 채색을 할 때에 임금이 다시 임시(臨視)할 것을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원전】 40 집 493 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예술-미술(美術)
'祖上의 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익정(趙益貞) (0) | 2008.12.19 |
---|---|
조발(趙潑) - 8代祖 (0) | 2008.10.28 |
조상경(趙尙慶) - 9代祖 (0) | 2008.10.28 |
조병문(趙秉文)-5代祖 (0) | 2008.10.28 |
漢山君 漢平君 墓庭 (0) | 2008.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