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인해서 두 눈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크게 낙심을 했고,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지요.
추위가 어느 정도 가시고 봄이 성큼 다가온 어느날,
이 사람은 지팡이를 들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거리를 거닐며 얼굴에 내리쬐이는 햇볕을 맞아보고 싶었거든요.
조용히 길을 걷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목적지까지 차로 태워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앞 못 보는 자신을 동정하는 것 같아서 정중히 거절하고 혼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드리며 걷다 보니 앞에 도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빠르게 지나가는 차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널 수가 없는데 자신은 신호등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할 수 없이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끌고 도로를 건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어떤 남자가 옆에 서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와 함께 길을 걸어가도 될까요?”
그는 이 남자의 정중한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좋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이 남자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았고, 둘은 천천히 길을 건넜습니다.
어느 정도 도로를 다 건넜다고 생각할 때, 자동차 경적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신호가 바뀌었나 보군.’하고 이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주위에서 경적이 울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편하게 길을 건너게끔 도와준 이 남자가 너무나 고마웠지요.
도로를 건넌 뒤, 이 사람은 자신의 팔을 잡고 같이 길을 건넌 그 남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먼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어요.
“저 같은 장님을 도와 길을 건너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둘은 모두 장님이었습니다.
이 둘은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도로를 안전하게 건널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해서 도로를 무사히 건널 수가 있었지요.
이처럼 이 세상에는 함께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요.
함께 함으로써 나에게 더 큰 이익이 올 수 있지만, 함께 함으로 인해 나에게 더 큰 손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혹시 올지 모르는 손해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이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정녕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누군가와 함께 하면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을 느끼는 기쁨이 진정 크다는 사실입니다.
조명연·정병덕 지음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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