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1.10 03:09 | 수정 : 2011.11.10 14:34
[원주 청원학교 근무 장동철씨]
특수학교서 공익 마친 그, 2년 월급통장을 건네며 "온수기 살 때 보태세요"
아이씻길때 가끔 찬물이 나와 월급모아 꼭 사주고 싶었어요
영화 도가니로 뭇매 맞지만 특수학교 선생님들 너무 고생
"응, 형이 너희한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보답하는 거야."
지난달 1일 강원도 원주시의 '청원학교'에서 조촐한 기념식이 있었다. 지난 2년간 이 학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이날 소집해제되는 연세대 생화학과 3학년 장동철(23)씨가 100만원을 기부했다. 공익근무요원 월급을 꼬박꼬박 모은 손때 묻은 통장을 건네받은 학교 선생님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일부는 눈물을 비쳤다. 장씨를 따르던 아이들은 옷깃을 잡아당기고 주변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청원학교는 지적 장애인 교육기관이다. 교사와 행정 직원 등 100여명이 장애아 246명을 가르친다. 선생님들은 "평소 장씨가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은 봤지만, 이렇게 돈을 모아서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영화 '도가니'가 화제가 되면서 특수학교에 대한 시선이 따갑지만 특수학교 선생님들은 정말로 고생들 하신다"고 했다.
- “아이들이 제게 준 것이 더 많아요.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 줬죠.”9일 오후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장동철(23)씨는 인터뷰 내내 수줍은 표정이었다. 장씨는“앞으로 장애인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장씨는 2009년 9월 공익근무요원 입대 당시 청원학교 근무를 자원했다. 구청에서 행정 사무를 보조하는 것보다 장애아들을 돌보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가 본 특수학교에서 장씨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이틀째 되는 날 자기보다 두 살 많은 지적 장애인의 대변을 치우고 직접 몸을 씻겨주는 일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특수학교에는 인지능력이 거의 없어서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많아요. 지적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심각한지 그때 깨닫게 됐어요."
장씨는 교사들의 보조 업무뿐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청원학교 관계자는 "거칠어서 모두 꺼리는 아이를 장씨가 자진해서 맡아 돌봤다"며 "그 아이가 나중에는 장씨만 보면 안기고 웃어서 선생님들도 (아이의 변화에) 놀랐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렇게 장애인들을 직접 도우면서 월급을 모아 기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가 식비·교통비를 제하고 받은 월급은 10만3800원(병장 기준) 남짓. 장씨는 복무 기간이 끝나는 날에 맞춰 모은 돈 100만원이 든 적금통장을 그대로 청원학교에 기부했다. 그는 "온수 탱크가 작아서 아이들을 씻겨줄 때 찬물이 나오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몹시 마음이 아팠다"며 "월급을 모아 자동 온수기라도 마련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뿐"이라고 했다. 장씨는 "집이 원주라 출·퇴근하면서 근무하고 식사도 다 학교나 집에서 해결했기에 돈 쓸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청원학교 경험은 장씨의 인생 진로도 바꿔 놓았다. 원주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연세대 생화학과에 진학한 장씨는 암 관련 연구를 전공하려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지적 장애인들을 위해 신경과학 분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제가 아이들에게서 받은 것이 더 많아요. 전 아이들에게 고작 돈 100만원을 줬지만, 아이들은 제게 새로운 세상을 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