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360만부나 팔렸고, 우리나라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몇 년 전 올해의 10대 경영서적으로 선정된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쓴, 왕중추라는 사람이 한국의 한 기자와 인터뷰 하면서 ’100 빼기 1은 99가 아니라 0’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100 가지를 잘해도 단 한 가지를 실수하면 전체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은 성공한 대기업 총수에게만 해당되는 경영마인드는 아닙니다.
학교 다닐 때는 1 더하기 1은 2가 정답이었는데, 사회에 나와서 보니 100 빼기 1은 99가 아니라 0이라는 것이 참 정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꽉 짜여 있는 자연생태계에서도 한 종이 사라지면 그 생태계 전체가 곤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의 신체도 그 내부기관 중 어느 하나가 빠지면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수천 개의 부품으로 되어 있는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라면, 그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의 삶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왜’라는 물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꼭 물어야 하는 인간 삶의 공리인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시간에는 수학만 배워야 했고, 과학 시간에는 과학만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고, 둘 곱하기 둘은 넷이었습니다.
그 외의 답은 모두가 틀린 답이고 그래서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목욕탕 속에 들어가면 우리 몸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뜨게 됩니다.
왜 뜨느냐고 물었더니 ’부력’때문에 뜬다고 했습니다.
부력이라고 답한 학생은 머리가 좋은 학생이고 소위 아이큐가 높은 학생들이라 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력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더니 뜰부(浮)자에 힘력(力)이라 하여 ’뜨는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이 왜 뜨느냐는 물음에 ’뜨는 힘 때문에 뜬다’고 하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처음부터 수학시간에 수학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과학도 함께 가르쳐야 했습니다.
과학을 통해서 현장의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 현장의 기술이 오늘날 인간 삶의 현장으로서 정보사회를 이루어낸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정보사회라는 것을 역 추적해 보면 그 정보 속에는 기술이,
그 기술 속에는 과학이,
그 과학 속에는 수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 정점에 인간이 서 있는데, 어떻게 한 과목만 딱 떼어서 가르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예체능까지도 포함하는 수업의 새로운 내용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참 교육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단순한 답습을 위한 암기교육이 아니라 이해력을 위한 놀이교육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백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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