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졸지에 말춤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싸이를 보며 도대체 끼라는 게 무얼까 생각해본다.
아내는 나더러 끼가 많은 남자라고 한다.
예술은 자기가 하면서 과학 하는 나한테 예술을 했더라면 오히려 더 잘했을지 모른다고 부추긴다.
하기야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인이 되겠답시고 껍죽거렸고
대학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는 홀연 미대에 가겠다는 어쭙잖은 꿈을 꾸기도 했다.
어느 책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어쩌면 다음 생에서 춤꾼으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어쩌다 점잖은 학자가 되어 호시탐탐 튀어 오르려는 끼를 애써 억누르고 사는 내가 가끔 안쓰럽긴 하다.
평생 음악인으로 산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 전 총장님은 은퇴하신 뒤 소설을 쓰느라 여념이 없다.
선생님이 과연 세계적인 문호로 거듭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자신의 끼가 피어오르는 대로 사시는 모습이 마냥 아름다워 보인다.
지난해 서울대생들이 도서관에서 많이 빌린 책 중 하나인 ’총, 균, 쇠’의 저자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UCLA 교수는 학자로서 끼를 종횡무진 흩뿌리며 산다.
UCLA 의대 생리학 교수로 시작하여 생태진화생물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아예 지리학과로 자리를 옮겨 인류 문명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학자의 삶에도 끼를 펼칠 길은 무궁무진하다.
반드시 붓을 꺾어야만 끼를 부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영어 사전은 ’끼’를 ’talent’로 번역하지만 ’talent’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재능’이 된다.
그러나 재능은 있어 보이는데 그걸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끼가 없다고 하는 걸 보면 끼는 분명 재능 이상의 속성이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패권은 누가 더 탁월한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느냐로 판가름날 것이다.
끼를 학술적으로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창의성이란 결국 끼의 구체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재능은 연마할 수 있지만 끼는 타고나는 기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학생들의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 교육’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진로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사뭇 구태의연한 노력으로는 수십 년간 꽁꽁 싸매둔 끼를 풀어헤치기 어렵다.
우리 교육계에 그야말로 환골(換骨)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최재천 /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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