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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주님 공현 전 토요일)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에게 속한 사람은 분명히 구분된다. 죄를 짓는 이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이며, 하느님에게서 나온 이는 죄를 짓지 않으며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다(제1독서).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들은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그분께 머문다. 이렇게 인격 깊이 예수님을 체험한 둘 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에게 메시아를 만났다 고 증언한다(복음). 제1독서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 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 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1요한 3,7-10) 복음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 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 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 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 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 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 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1,35-42) 오늘의 묵상 구분하고 판단하는 행위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릅니다. 신중함을 미덕으로 배운 우리는 되도록 중립적 위치에 오래 머물면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 다. 한 가지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한 가지를 잃는 것이 싫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어서 우리는 자주 결단보다는 미련을 가지고 삽니다. 어쩌면 선과 악을 쉽게 구분하려 하지 않고 판단을 멈춘 채 '괄호 치는' 태도야 말 로 원숙한 사람의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는 섣불리 내린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또한 큰마음 먹고 내린 정의로운 판단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보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도 있 습니다. 그러기에 신중하고 서두르지 않는 덕목은 분명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것이 지만, 우리는 이러한 신중함이 그저 처세술이나 갈등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무책임을 근사하게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요한 1서의 말씀은 모든 '삶의 기술'의 밑바탕에는 의로움을 향한 근본적 선 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러 줍니다. 우아하고 능숙하게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다고 마냥 자랑한 일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의로운 일을 실천하고 형제를 사랑하겠다는 확고하고 단호한 결심이 결여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미지근한 타협의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근본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원천은, 오 늘 복음이 보여 주듯 예수님과의 깊은 인격적 체험입니다. 그러한 체험에서 끊임없 이 새롭게 다지는 사랑의 결단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지혜일 것입니다.(매일미사 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새로운 빛을 비추셨으니, 동정녀 몸에서 탄생하신 성자께서 저희와 같은 인성을 지니셨듯이, 저희도 주님의 나라에서 그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2014. 1. 4. Martinus Giulio Caccini - Ave Maria : Dona nobis pacem
오늘의 묵상(주님 공현 전 토요일)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에게 속한 사람은 분명히 구분된다. 죄를 짓는 이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이며, 하느님에게서 나온 이는 죄를 짓지 않으며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다(제1독서).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들은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그분께 머문다. 이렇게 인격 깊이 예수님을 체험한 둘 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에게 메시아를 만났다 고 증언한다(복음). 제1독서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 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 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1요한 3,7-10) 복음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 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 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 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 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 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 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1,35-42) 오늘의 묵상 구분하고 판단하는 행위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릅니다. 신중함을 미덕으로 배운 우리는 되도록 중립적 위치에 오래 머물면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 다. 한 가지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한 가지를 잃는 것이 싫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어서 우리는 자주 결단보다는 미련을 가지고 삽니다. 어쩌면 선과 악을 쉽게 구분하려 하지 않고 판단을 멈춘 채 '괄호 치는' 태도야 말 로 원숙한 사람의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는 섣불리 내린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또한 큰마음 먹고 내린 정의로운 판단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보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도 있 습니다. 그러기에 신중하고 서두르지 않는 덕목은 분명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것이 지만, 우리는 이러한 신중함이 그저 처세술이나 갈등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무책임을 근사하게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요한 1서의 말씀은 모든 '삶의 기술'의 밑바탕에는 의로움을 향한 근본적 선 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러 줍니다. 우아하고 능숙하게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다고 마냥 자랑한 일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의로운 일을 실천하고 형제를 사랑하겠다는 확고하고 단호한 결심이 결여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미지근한 타협의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근본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원천은, 오 늘 복음이 보여 주듯 예수님과의 깊은 인격적 체험입니다. 그러한 체험에서 끊임없 이 새롭게 다지는 사랑의 결단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지혜일 것입니다.(매일미사 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새로운 빛을 비추셨으니, 동정녀 몸에서 탄생하신 성자께서 저희와 같은 인성을 지니셨듯이, 저희도 주님의 나라에서 그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2014. 1. 4. Martinus
Giulio Caccini - Ave Maria : Dona nobis pac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