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참된 단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주님의 목소리를 백성에게 전
해 준다.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며, 굶주린 이
들과 양식을 나누고, 헐벗은 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이러할 때 의로움이 드러
날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지켜 줄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
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이유를 요한의 제자들이 묻자, 당신을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 비유하신다. 손님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복음).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
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
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
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
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
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
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
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
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
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이사 58,1-9ㄴ)
복음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
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4-15)
오늘의 묵상
우리는 교회가 권고하는 단식의 의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를 습관적으로
지킬 것이 아니라 오늘 들은 독서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단식의 진정한
뜻을 생각해 본다면 이 사순 시기를 충실히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서는 단식을, 이웃을 위하여 투신하는 의로움의 행위와 연
결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 계명으로서의 단식이 향하는 목적지
를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단식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의로움에 물들어 가고
그 의로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는 것입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하늘은 의로운 사람의 영혼"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남겼습니다. 무릇 신앙인
이라면 하늘을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지상의 순례 여정에서 그
하늘을 자신의 마음에 감히 담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며, 그들이 담고자 하는
하늘은 다름 아닌 의로움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단식은 그 의로움이 자신의 마음에 자리하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수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단식은 의로움을 가리는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절제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며,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몫을 내어놓는 의로움
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단식은 작은 발걸음일 따
름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 딛는 것은 그 길을 모른 채 헛
된 노력을 하지 않는 데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는
진심과 이웃을 염려하는 애덕에서 우러나온 단식은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을
기꺼워하고 즐길 수 있도록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자리에서 단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 주님의 의로움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하는 기쁨에 맛 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수행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매일미사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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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가 시작한 참회의 생활을 인자로이 도와주시어,
육신으로 닦는 이 재계를 성실한 마음으로 완수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3. 7.
Mar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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