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일본은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된다

뚜르(Tours) 2014. 3. 13. 03:55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참으로 악연(惡緣)이다. 원래 민족과 영토와 문화적 충돌의 소지를 안고 있는 이웃 나라끼리 서로 관계가 좋을 리 없다지만 우리와 일본의 그것은 그 정도를 넘어 참담하다 못해 비극적이다. 일본은 우리를 통째로 말살한 살국(殺國)의 나라다. 근대 식민지 시대에는 비록 타 민족을 탄압하고 자원을 수탈했어도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아예 말살한 경우는 드물다. 100여 년 전 일본의 조선 병탄(倂呑)은 바로 그런 경우다.

우리의 주권(主權), 말과 글, 성(姓)과 이름, 고유 전통과 문화를 송두리째 빼앗고 없애버린 잔인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우리는 5000년 역사에서 1000년 넘게 이웃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렸다. 그 주범(主犯)이 중국이었지만 중국은 우리를 그들의 지배하에 두었을망정 나라를 없애고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정치적 종주(宗主)의 상태는 악랄했어도 문화적·민족적 측면에서는 우리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은 문화적·인종적 열등감에서인지 우리를 존재부터 없애려 했다. 우리가 5000년 역사에서 나라를 아예 잃은 것은 일본에 의한 것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국토가 분단(分斷)된 것도 일본에 기인(起因)하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를 직접 둘로 가른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우리는 전승국(戰勝國)들의 전리품(戰利品)으로 내둘리며 국토 분단의 비극을 맞은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씨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원래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분단됐어야 옳다. 전쟁의 책임으로 독일이 동서로 나뉘었듯이 일본도 (4개 열도 중) 동쪽 섬 2개, 서쪽 섬 2개로 나뉘었어야 옳다"고 했다. 전쟁은 일본이 일으키고 그 죄과는 엉뚱하게도 우리가 뒤집어쓴 꼴이다. 우리는 철저히 일본의 희생양이었다.

일본이 피폐한 전후(戰後) 경제에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6·25전쟁 덕(德)이다.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나라의 자원을 탕진한 일본은 그로부터 5년 후 한국 땅에서 벌어진 동족 간 전쟁에서 미군의 군수 기지 역할을 하면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일본은 옆집에 난 불(火)난리 때 물장사를 한 셈이고, 자기들의 죄과로 파생한 남의 고통에서 쾌락을 즐긴 꼴이다. 오늘날 일본이 미국의 대(對)아시아 전략의 전위대가 돼서 챙길 수 있었던 세계 정치의 지분(持分) 역시 한국이 갖는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요소 덕분이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에 지은 죄(罪)도 많고 한국으로 인해 얻은 이득도 많다. 오늘날 일본이 얻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은 일본인의 꾸준한 노력과 기회 포착의 영리함에 힘입은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건 자기가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챙기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들이 이웃 나라에 고통과 어려움을 준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죄스러워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은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최소한의 예의와 양심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아베 총리를 앞세워 표출되고 있는 일본의 국수적 열풍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어제를 잊는 망각’ ’자기들이 남에게 준 고통과 피해를 도외시하는 편리함’은 세계를 기막히게 하다 못해 분노하게 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배려의 민족’이었다. 우리는 그런 일본인과 일본 사회의 반듯함을 부러워했었다. 그 예의 바름과 반듯함이 실종됐다. 지금 일본은 ’남의 상처를 더 쑤셔대는’, 어쩌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이상한 나라로 가고 있다. ’위안부는 없었던 일’이고 ’독도는 일본 땅’이고 ’남경 학살이나 731부대도 모르는 일’이며 자기들이 오히려 전쟁의 피해자라는 등등의 모르쇠 일변도로 가고 있다. 그런 증세가 차라리 치매성(性)이기를 바라는 측은한 마음뿐이다.

그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거나 종전(終戰) 직후의 일이라면 또 모르겠다. 한 세기 전에 이미 세계 역사의 한 장(章)으로 기록에 남은 일들을 오늘에 와서 "모른다"로 나오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의도 아니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일본이 지난 과오에 대한 최소한의 퇴로를 열었더라면 우리도 ’우리가 지키지 못했던 우리 백성의 아픔을 우리가 책임을 지자’는 논의를 더 발전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등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그 기회를 오히려 정치적으로 악용함으로써 이제 우리와 일본 간의 관계는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명예를 생명보다 중히 여겼다고 알고 있다. 오늘의 일본은 그 ’사무라이’의 후손이 아닌 것 같다. 잘못했으면 무릎을 꿇고 배를 가르던 일본은 이제 없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는 다 해도, 자기들이 나라를 빼앗았고 자기들로 인해 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는 우리한테만은 이러면 안 된다.

                                        <김대중 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