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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간 목요일)

뚜르(Tours) 2014. 3. 20. 01:11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주님께 신뢰를 두는 이의 행복을 전 한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에도 그 잎은 푸르고, 가문 해에도 열매를 맺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 에게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자신만 호의호식한 채 그 집 앞에 서 비참하게 고생하던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다. 그 반 면 죽은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서 위로를 받는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 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 에서 살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 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예레 17,5-10)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 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 이의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 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엿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 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 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 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 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 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 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 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 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 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19-31)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으면,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인 '데칼코마니'가 생각납니다. 데칼코마니의 한편은 현세이고, 다른 한편 은 죽은 뒤의 삶입니다. 현세에서 부자가 겪는 즐거움과 라자로의 비참함이 죽 은 뒤의 삶에서는 서로 역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 한쪽을 보면 다른 한쪽 을 그려 낼 수 있습니다. 죽은 뒤의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가련한 부자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라자 로를 가르는 메울 수 없는 골짜기입니다. 반대편에 있는, 현재의 삶에서 죽은 다음에 만나게 될, 건널 수 없는 골짜기에 대응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 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수신자는 바로 부자입니다. 저승에 있는 골짜기는 부자가 살아 있는 동안 현세에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뜻이 이 비유에 담겨 있습니다. 그 골짜기는 다름 아니라 스스로를 다른 이의 고통에 서 분리시켜 놓는 무관심하거나 무정한 마음을 통하여 서서히 생겨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리'라는 포콜라레 성가가 생각났습니다. "온 세상 곳곳에 수많은 강이 흐른다/ 길고 깊게 흐르는 강 우리를 가른다/ 서로 물 건너 마주 바라보지만 만나지 못한 채/ 그 눈빛은 불신으로 가득 차/ 어찌 강 위에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어찌 강 위에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지 않는가/ 어찌 다리를 놓지 않나."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을 자신을 쉽게 남들과 구별 짓고 그들이 닿지 않는 곳 에 있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불행의 골짜기를 만드는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 사이를 갈라 놓 은 강을 이어 주는 다리를 놓아 서로 진솔하게 만나는 삶, 서로의 짐을 덜어 주 며 돌보는 삶,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십니다.(매일미 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하느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니, 저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시어, 굳은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3. 20. Martinus

     

    알레그리 시편 51편 Miserere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