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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아모스 예언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재건을 약속하신다. 백성이 허물어진 성읍을 다시 세우고 포도주를 마시며 과일을 먹는 가운데 주님께서 주신 땅에서 다시는 뿌리 뽑히지 않을 그날이 온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단식에 대해 묻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잔칫집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에는 단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비유로 설명하신다. 또 한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고, 새 포도주는 헌 가죽 부대가 아니라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라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벌어진 곳은 메우고, 허물 어진 곳은 일으켜서 그것을 옛날처럼 다시 세우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으로 불린 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리라. ㅡ 이 일을 하실 주님의 말씀이다. ㅡ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밭 가는 이를 거두는 이가 따르고, 포 도 밟는 이를 씨 뿌리는 이가 따르리라. 산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모든 언덕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넘치리라.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리니, 그들은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 시 세워 그곳에 살면서 포도밭을 가꾸어 포도주를 마시고, 과수원을 만들어 과 일을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니, 그들은 내가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뽑히 지 않으리라." ㅡ 주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아모 9,11-15) 복음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 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 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 9,14-17)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단식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단식 의 실천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그분의 종교성을 규정하고 싶어 했던 당대의 많은 '종교인'에게 중요한 문제였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아마도 매우 엄격한 단식과 고행을 종교성의 핵심으로 여겼 을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뿐 아니라 바리사이들도 예수님께서 단식을 잘 지 키시는지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처럼 광야의 고행자가 아니었지만 계명의 철저한 준수가 그들이 이해하는 종교성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단식 규정의 준수 또한 예수님의 종교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즐거이 어울려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보라, 저 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루카 7,34)하고 비아냥거리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단식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확신한 종교 성의 기준을 예수님께서는 인정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참으 로 원하셨던 것은 혼인 잔치로 비유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감지하고 그 초 대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은 달콤하고 편한 것만 찾는 태도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겠다는 결심을 품고 있을 때 온전하게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단식은 이러한 관 점에서 비로소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구원 의 기쁨을 표현하고 숙성해 갈 수 있는 단식을 말씀하신 거싱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성서학자들은 이 새로운 단식이란 단지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와 회개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언을 바라 보는 마음이자, 자신의 종교적 '업적'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종교적 실천에 애쓰면서도 '주님은 언제나 더 크신 분'이 라는 교회의 오래된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가 생각하는 종교성의 기준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과 성찬과 삶의 여러 사건 속에서 드러내시는 기쁨의 초대를 섬세하게 알아듣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7. 5.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