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8월 2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뚜르(Tours) 2014. 8. 2. 00:25

 

    오늘의 묵상(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말씀의 초대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시도하였으나,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리 게 하면 백성이 그 책임을 질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대신들과 백성은 그를 살려 두자고 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차지한 헤로데에게 부당하다고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이 때문에 헤로데는 요한을 가두었으나 백성이 두려워 죽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헤 로디아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헤로데는 괴로워하면서도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복음). 제1독서 그 무렵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귀로 들 으신 것처럼 이 사람은 이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였으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이에 예레미야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 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 십시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 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백성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지 는 않게 되었다.(예레 26,11-16.24) 복음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 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 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 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 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 아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 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 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마태 14,1-12)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최후에 대한 상세한 정황을 알려 줍니다. 유다의 역사 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살로메'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헤로디아의 딸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반드 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은 헤로데의 마음입니다. 복음은 헤로데의 잘못된 행 위가 무엇이며, 그의 불편한 심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뛰어난 철학자들의 윤리적 통찰의 도움으로 성찰해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요한에 대해 '분노'와 '두려 움'이 뒤섞인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연회석 손님들 앞에서 춤추 어 헤로데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기분이 들뜬 헤로데는 성급하게 약속은 하였으 나 자신의 위신을 지키고자 요한을 죽이라는 명령 앞에서는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막강한 힘을 지닌 '폭군'이 과연 행복한지를 매우 진 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폭군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데, 그 마음이 서로 상반되는 원의와 욕구로 갈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 코 자기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행복한 사람의 특징 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벗'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올바 른 행위를 수행하게 하는 덕은 다름 아니라 감정과 원의가 갈림 없이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데서 비롯됩니다. 헤로데에게도 회한과 일말의 양심은 있었을 것이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감정도 있었겠지만 혼동되고 무질서한 마음, 갈라진 원의는 올바른 행위의 기회를 놓치게 했습니다. 그의 불편한 심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었고,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인 간의 보편적인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여러 욕구와 감정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 보며 조화와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을 꾼준히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매일미사에서 옮겨 옴) -------------------------------------------------------------------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보살피시니, 저희가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8. 2. Martinus

     

    Ave M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