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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오늘의 묵상(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뚜르(Tours) 2014. 8. 22. 08:37

 

    오늘의 전례(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1900년 무렵부터 마리아께 '여왕'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다. 1925년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해지면서 이러한 요청은 더욱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마리아께서 여왕 이심을 선언하고 해마다 5월 31일에 그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그 뒤 로마 전례력의 개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연결시키고자 성모 승천 대축일 뒤로 옮겼으며, 축일 이름도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로 바꾸었다. 이날 교회 는 성모 승천의 영광을 거듭 확인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 원의 도구가 되신 것을 기린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가 계곡에 있는 뼈들이 부활하는 환시를 본다. 주 하느님께서 는 뼈들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나게 하시고, 영을 불어넣으신다. 이는 이스라엘 을 다시 회생시켜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시고 백성이 주님을 알게 하리라는 약속 을 의미한다(제1독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 율법 교사 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 하는 것이라고 답하신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 해야 한다고 하시며,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하신 다(복음). 제1독서 그 무렵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분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 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 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 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 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 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에제 37,1-14)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 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 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 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 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4-40) 오늘의 묵상 우리나라의 현대 수묵화를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월전 장우성 화백의 수필 집『월전수상』에는 '흑과 백'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흑과 백은 절대 상 반의 두 개의 원색이다. (중략) 그래서 이 두 원색은 어떠한 경우에도 혼동이나 착란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기에 옛날에서 현재까지 뚜렷한 대조를 표시해야 할 경우에 항상 흑백을 이용한다. (중략)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러한 색상 감 각의 표준 의식이 흐려졌거나 삐뚤어져 버린 것 같다. 번연히 흰 것을 검다고 우 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옻빛같이 검은 것을 눈빛같이 희다고 억지 쓰는 친구 들도 있다." 수묵화의 세계와는 달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 려운 상황들을 자주 만납니다. 판단을 해야 할 때 섣불리 자신의 직관에 의지하 기보다는 찬찬히 관찰하고 경청하는 태도와,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 진실'이 있 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자세가 인생의 지혜이자 현대 사회가 조화롭게 유지되는 조건입니다. 이처럼 인생사는 오히려 마치 경계를 꼭 집어 말할 수 없도록 미묘하게 색이 변해 가는 수채화의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지혜'가 구체적 상황에 적용되려면 역설적으로 그 중심에 근본적 원리에 대한 분명하고 타협 없 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흑백 논리'로 삶의 복잡다단함을 재단 하지 않는 관용의 태도는 섬세하고 호의적인 배려가 아니라 무책임한 상대주의 나 자기 이주의 주관주의로 귀착될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흑이 백이 될 수 없는 수묵화의 세계처럼 우리에게도 삶의 최종 가치에 대한 양보 없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투신입니다. 이 '원리'에는 어떠한 모호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계명의 분명한 요구가 삶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님 을 우리는 수묵화의 은은한 운치를 느끼며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매일미사에 서 옮겨 옴) ----------------------------------------------------------------- 오늘의 기도 "하느님,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저희 어머니요, 모후로 무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분의 전구로 보호를 받아,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 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2014. 8. 22.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