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는 신자들을 훈계하며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참된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
는 안 되며 복음을 충실하게 전해야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묻는 율법 교사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전심으로 실행하는 것이라
고 대답하신다. 누가 이웃인지 반문하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그렇게 행하라고 명하신다(복음).
제1독서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
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
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
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제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
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
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
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
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도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
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갈라 1,6-12)
복음
그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
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
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
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
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
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
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25-37)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듣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하는 말씀이지만, 믿지 않는 선의의 많은
사람도 이 말씀에 깊이 감동하여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 비유의 보편적인 호소력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이의 마음에 심어 놓
으신 사랑의 계명을 감지하게 됩니다. 고통에 빠진 이웃에 해한 연면의 정이나 사
랑의 실천이 없다면, 어떤 높은 지위에 있든, 얼마나 많은 지식과 어변을 지녔든,
그는 가장 중요한 '인간다움'을 잃은 자입니다. '인간다움'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의
근원이자 행동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로써, 왜 우리가 그리도 자주 인간다움을 잃고 사는지를 깨
우쳐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나
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상관없는, 굳이 마음 쓸 필요 없는 익명의
'타인'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마르티니 추기경은 철학자 옴베르토 에코와 가진 서면 대답
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우리 스스로를 성화하기 위한 이 세계는 존재에 관한 가치
중립적인 이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이 사건들이나 자연 현상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세계는 얼굴이라고 하는 이타성의 중심들이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셰계도 존재한다(마르티니·에코 공저,『무엇을 믿을 것
인가』에서)..
나와 무관한 '타인'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 만날 '이웃'으로 존재합니
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서 '이웃의 얼굴을 보는 것, 그것이 보편적 윤리입니다. 또한
그 윤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겨 주신 '사랑의 계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그리
스도인의 길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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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10. 6.
Martinus
♬ 묵주 기도 드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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