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몽골의 대지에 두 발을 딛었을 때 눈앞에 펼쳐지던 그 막막한 풍경. 나를 꼼짝할 수 없이 가두고 있는 사방의 지평선은 단지 ‘황량한 들판’이라고 말해 버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무릎 닿는 풀 한 포기 없고,
그늘이 되어 줄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으며, 마른 목을 적실 물 한 모금 찾기 어려운 그곳. 방향을 가르쳐 줄
만한 표식은 물론이요, 불러 볼 사람 하나 없이 영하 50도의 추위와 맹렬한 더위만이 자리를 바꿔가며 인간의
방문을 한사코 거부하는 땅.
그곳에는 고독한 영혼을 위무할 꽃들의 향기도, 수고로운 생애를 맡길 숲의 그늘도, 대지에 심어 놓고 생명의
육성을 노래하며 수확을 기다릴 씨앗도 없었다.
몽골의 대평원에 섰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육체적 긴장에 사로잡힌다. 그 벌판을 대하는
순간, 그 동안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생존 방법이 단 하나도 먹혀 들것 같지 않은 어떤 한계 상황을 만나는
것이다.
정착문명 속에서 누려온 생존의 방법이 그 황량한 곳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랬을 때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는가?
그곳에서 역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식물의 고향은 흙 속이지만
동물의 고향은 바람 속이다
식물적인 사회는 정착해서 자라지만
동물적인 사회는 이동하면서 성장한다
외로운 인간아
영혼은 머무는 것인가 떠나는 것인가
- 김종래 지음 <유목민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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