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딸 /김남주
저기 가는 저 큰애기를 보아라
새참으로
막걸리 든 주전자를 들고
보리밥과 김치로 가득한 바구니를 이고
반달 같은 방죽가를 돌아
시방
논둑길을 들어서는
부푼 저 가슴의 처녀를 보아라
마른자리 반반한 풀밭을 골라
빨갛게 파랗게 원앙을 수놓은 하얀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들밥을 차리는 농부의 딸을 보아라
이 마을에 아니 이 나라에 하나뿐인
검은 치마 하얀 저고리를 보아라
―아부지 그만 쉬었다 하셔요
저만큼에서 허리 굽혀 나락을 베는 아버지 곁으로 가
아버지 대신 나락을 베고
―아저씨 밥 한술 뜨고 가세요
지나가는 낯선 사람도 불러
이웃처럼 술도 한잔 드시게 하는
조선의 딸 그 마음을 보아라
마을에 하나뿐인 아니 이 나라에 하나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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