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트 '키스'>
절정을 복사하다 / 이화은
예술의 전당에서 이만원 주고
클림트의 키스 복사본을 사왔다
트윈 침대만 한 북쪽 한 벽에
햇솜 같은 할로겐 불빛을 짙게 깔고
그들을 눕혔다 이건 아니다
너무 진부했다
매양 여자가 아래로 깔리는 체위
뒤집어 여자를 위로 올렸다
마침 티브이에서 못 생긴 여자가
여성 상위에 대해 침을 튀기고 있다
못생길수록 위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이 시간부터 그렇게들 생각한다면
고즈넉이 남자의 입술을 먹고 있는
이 여자는 너무 아름답다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불빛이 주르르 발 아래로 흘러내린다
나는 체위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 입맞춤이 끝나고 그들은 눕던가
헤어져 돌아가던가 할 것이다
한국 영화처럼
끝까지 다 말해 버리지 말자 하지만
이 숨막히는 정적
한순간만은 다시 복사해
내 가장 숨막히는 시간 속에
걸어두고 싶다
- 이화은, 『절정을 복사하다』(문학수첩, 2004)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소화 사랑 /정심 김덕성 (0) | 2023.06.29 |
---|---|
나비 시인 - 문정희 (0) | 2023.06.28 |
굴비 - 김신용 (0) | 2023.06.26 |
유월의 혼 불 /장수남 (0) | 2023.06.25 |
희망가 - 문병란 (0) | 2023.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