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이올린 테크닉을 개발한 것처럼 (내가) 피아노의 테크닉을 개발한다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까?” -프란츠 리스트
“난 일생에 세 번 울었다. 내 오페라가 크게 실패했을 때, 소풍 가서 구운 칠면조를 강에 빠뜨렸을 때, 그리고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다.” -조아키노 로시니
1840년 오늘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찬탄했던 ‘그’, 이탈리아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가 프랑스 니스에서 5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아시다시피 파가니니는 조연에 머물던 바이올린을 주연으로 승격시킨 음악가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죠?
파가니니는 악마로 몰려서 사후 36년 동안 고향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파가니니가 48세 때 소프라노 가수 안토니아 비안키와 사랑하며 가졌고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 아킬레가 교황청에 끊임없이 탄원하고 교회에 로비를 한 끝에 아버지를 고향 제노바에 모셨지요.
파가니니는 54세 때인 1836년 프랑스 파리에서 카지노 사업을 펼쳤다가 쫄딱 망합니다. 생고생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1839년 성탄절에 파리를 떠났는데, 마르세유를 떠나 니스에 이르렀을 때 몸이 급격히 쇠약해집니다. 니스의 주교가 ‘마지막 성찬’에 초대했지만, 파가니니는 고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내출혈로 피를 토하며 숨집니다. 그래서 교회가 ‘괘씸죄’를 적용했고 세간에 퍼진 풍문과 섞여 ‘악마설’이 단단히 뿌리내린 것이지요.
파가니니는 ‘악마와의 계약’ 때문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쉼 없는 연습 때문에 ‘악마 같은 재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5세 때 배운 만돌린과 10대 때 배운 기타 등을 응용해 창의성을 펼칠 수 있었고요.
몸의 치명적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한 것도 남다른 기교를 가능케 했지요. 그는 ‘마르판 증후군(Marfan syndrome)’ 또는 ‘엘러스 단로스 증후군(Ehlers–Danlos syndrome)’ 환자로 추정됩니다. 둘 다 결합조직에 문제가 생기는 유전병인데 앞의 것은 얼굴, 팔다리와 손가락이 가늘고 길고, 뒤의 병은 유전적으로 콜라겐이 적게 분비돼 관절 운동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고 탈구가 잘 일어납니다. 둘 다 생명을 위협하지만, 파가니니가 엄청난 기교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두 병 탓에 긴 손가락으로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파가니니는 1822년 42세 무렵, 매독에 걸려서 수은, 아편을 치료제로 먹으며 부작용을 겪습니다. 54세 때엔 결핵 진단을 받았는데, 회복됐다가 재발해 파가니니의 생명을 앗아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은 파가니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뛰어난 실력을 얻었다기보다는,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가 그를 악마의 사도로 몰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더 많을 겁니다.
악마는 사람과 따로 존재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결핵이 잠복해 있다가 몸이 약해지면 살아나 몸을 파괴하듯, 악마도 내 마음속에 숨어있다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런 존재 아닐까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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