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두 아들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 삼다니…

뚜르(Tours) 2024. 8. 25. 18:25

 

여러분은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보통 사람은 절대 못할 것입니다. 가족윤리가 중심인 유교에서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일 겁니다. 1902년 오늘은 경남 칠원군 상리면 남구리(현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에서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가 태어난 날입니다.

 

손 목사는 보통 사람에겐 덜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 신도들에겐 ‘사랑의 원자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위인입니다.

 

손 목사는 평생 한센병 환자를 돕는 삶을 살았습니다. 36세 때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이듬해 전남 여수의 애양원교회에 전도사로 갔습니다. 교회는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하는 시설을 운영했는데, 중증 환자를 격리한 방에서 환자가 간호사를 목침으로 때려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간호사가 신문지를 깔고 들어가니, 환자가 모욕감을 느끼고 간호사를 살해한 것입니다. 그때 손 목사는 맨발로 그 방에 있던 ‘살인자’에게 다가가 잠시 기도를 하고는 입으로 그의 상처를 직접 빨아 고름을 빼냈습니다. 애양원에서 감염을 우려해 검사했더니 전염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안도했는데 정작 손 목사는 “내가 나병에 걸리면 그들과 똑같아질 것이고 환자가 내게 더 거부감 없이 대할 텐데…”하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손 목사는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체포돼 5년 수감 생활을 하고 광복을 맞습니다. 해방 이후 애양원에서 정식 목사로 근무하던 중 ‘여순반란사건’의 소용돌이에서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장남과 차남이 반란군 세력에 무참히 살해당한 것입니다. 애양원의 모든 식구가 슬픔에 잠겼을 때 손 목사는 장례 예배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감사 기도’를 올립니다.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오게 한 데 대해 하나님, 감사하다며···.

 

반란이 진압된 뒤 두 아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좌익 학생의 처형 직전, 손 목사는 또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자신의 설교 일정이 잡혀있어, 딸을 대신 보내 그 살인자가 처형당하는 것을 말리고 그를 양자로 삼은 것입니다.

 

손 목사는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센병 환자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끝까지 애양원에 남아있다가 북한군에게 잡혀서 총살당합니다. 양자 안재선은 양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나중에 암으로 숨지기 전에 양동생에게 “천국에서 네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안재선은 목사가 되라는 양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교에 입학해서 우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 때문에 목사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인 안경선은 목사가 됐으니 손 목사의 뜻은 양손자에게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안경선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아프리카 브룬디에서 한센인을 돕는 선교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 목사의 삶은 박재훈 목사가 창작한 ‘오페라 손양원,’ 권혁만 감독의 영화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어쩌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옳다고 믿는, 세상의 상식으로는 손 목사의 용서가 정의(正義)에 어긋날 수도 있을 겁니다. 용서보다 복수가 사람의 본성에 더 맞는 것 같은데, 손양원의 용서에 뜨겁게 감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손 목사의 용서는 악연을 끊고 사랑의 미래를 낳았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용서에도 인색한 우리 사회이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욱 더 경외스럽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나요, 혹시 오늘 누군가를 용서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까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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