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한 가정집 주방. 세 남자가 화학물질을 흡입하고 기분이 좋아져 낄낄대며 유머를 나누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픽, 쓰러졌습니다. 눈 감은 얼굴은 모두 밝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들 중 하나가 먼저 깨서 외쳤습니다. “드디어 찾았다!”
1847년 오늘(11월 4일)은 의학사를 크게 바꾼 마취제 클로로포름의 효과가 발견된 날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영 심슨 박사와 두 조수 의사가 새로운 마취제를 찾아 온갖 물질을 흡입하다 얻은 결과였습니다.
심슨은 며칠 전 린리스고를 방문했다가 그 지역 약사에게 최근 관심거리에 대해 말했다가 “왜 클로로포름을 써보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클로로포름은 3염화물을 뜻하는 ‘테르클로라이드’와 ‘포름알데히드’의 합성어로 트리클로로메탄(TCM)으로도 불립니다. 5년 전 런던의 의사 로버트 모티머 글로버가 실험용 동물에 대한 클로로포름의 마취 효과를 발견했지만 부작용 우려 때문에 사람에겐 쓸 생각조차 못했지요.
심슨은 에든버러로 돌아와서 두 명의 약사로부터 얻은 클로로포름을 조수들과 함께 직접 흡입하고 효과를 확인한 뒤, 조카에게도 시험했습니다. 조카는 “나는 천사다!”라고 노래부르다가 곧 잠에 빠졌습니다. 심슨은 극심한 산고(産苦)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클로로포름을 사용했고, 이 마취제로 아기를 낳은 첫 번째 산모가 아기 이름을 ‘마취’란 뜻의 ‘아네시지아(Anaesthesia)’라고 지었다는 소문이 정설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첫 아기 이름은 ‘윌헬미나(Wilhelmina)’였고 아네시지아는 별명이었다고 밝혀지기는 했지만.
심슨은 주변과 자신이 여왕의 주치의로 있던 왕실에서 클로로포름의 무통 효과에 대해 전파했고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를 낳을 때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유럽 전체로 번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임부들이 혜택을 받았지요.
심슨이 클로로포름의 마취 효과를 발견한 것은 호기심과 우연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많은 의사학자(醫史學者)들은 우연을 강조하는데, 심슨이 만약 너무 많은 클로로포름을 흡입해서 사망했다면 위험한 물질로 여겨졌을 것이고, 조금만 덜 흡입했다면 잠에 빠지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거기에 더해 심슨의 열린 마음과 호기심, 탐구정신이 있었기에 우연이 현실화됐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겠지요?
심슨은 고고학에서부터 당시로선 금기 영역이었던 암수한몸증(자웅동체) 연구까지 궁금한 것을 못 참고 탐구했습니다. 호기심은 환자를 위한 열린 마음과 이어져 “병원에 왜 조산사를 두면 안되냐?”며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유럽에 유행했던 민간요법인 ‘동종요법’에 대해 반박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고학의 권위자로서 스코틀랜드고고학회에 가입했으며 부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매독과 한센병 연구를 통해 고고학과 의학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철학회의 국제회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지요. 모두 학자로서 끊임없이 ‘왜?’를 자문한 결과겠지요?
심슨은 모든 것에 박식하면서 자기 전문영역을 깊이 파는 ‘T자형 전문가’가 진정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진실’을 일깨워줍니다. T자형 지식인의 기본은 바로 인문학적 호기심이고요. 챗GPT에 학자와 기자 등의 자질에 대해 물었을 때 공통점이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시를 위한 변별력에 초점을 맞춘 ‘정답’이 지배하는 우리 교육계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T자형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을까요? ‘FM(Field Manual. 야전교범) 지식인’은 정상 부근까지 따라가서 2등은 하지만, 새 영역을 창조하기는 어렵고, 무엇보다 삶과 연구 자체가 재미 없고 의미가 덜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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