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난공불락이라고? 그러면 돌아가지

뚜르(Tours) 2011. 4. 1. 10:08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는 독일의 공격에 대비해 접경지대에 대규모 요새선(要塞線)을 구축했다.
육군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제의에 의해서였다.
그의 이름을 따 이 지하의 철옹성은 마지노선으로 명명됐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는 벨기에, 남쪽으로는 스위스의 국경에 닿았다.

1930년 착공해 10년 만에 완공됐다.
당시 축성기술의 정수를 모았고 지형의 요해(要害)를 이용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참호와 콘크리트 방벽은 물론 냉난방 시설과 지하철도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마지노선은 1940년 5월 독일군의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난공불락이라고? 그러면 돌아가지.’
그것이 히틀러의 전략이었다.
독일이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기에를 먼저 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벨기에에도 마지노선은 있었다.
‘에방에말 요새’

그러나 독일은 허를 찔렀다.
‘지상에서 막히면 하늘에서 공격한다.’
고성능 폭약과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특수부대가 40여대의 글라이더에 나눠 타고 벨기에 후방 깊숙이 침투했다.

결과적으로 마지노선은 프랑스군의 방심과 전략적 오판을 불러왔다.
프랑스는 땅속에 성(城)을 쌓고 그 속에서 깊은 잠을 잤다.
그때 독일은 하늘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그 유명한 ‘우회작전’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다.
1942년부터 일본군은 호주 북부에서 시작하여 필리핀에 이르는 솔로몬 제도를 요새화하는데
거대한 규모의 인력과 물자를 투입했다.
일본은 미군이 솔로몬 제도에 있는 각 섬의 요새를 공격하면서 지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태평양을 되찾는데 필요한 몇개의 섬에만 집중하면서 이 요새화된 섬들을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는 일본군의 물품 보급로를 차단하고 대규모의 일본 수비대를 고립시켜 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싱가포르 요새는 자타가 공인하는 난공불락이었다.
영국군은 일본군이 바다쪽에서 공격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대비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보란 듯이 북쪽 내륙에서부터 공격해 들어왔다.
영국군은 곧 일본군에 의해 제압되었고 1942년 2월 15일 62,000명의 영국주둔군은 항복했다.
나중에 윈스턴 처칠은 이를 두고 영국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자 가장 큰 규모의 항복이라고 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경우를 비유할 때 쓰는 말,
마지노선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 교훈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이러한 뜻이 왜곡돼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안전선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고의 기술과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요새도
결국 외부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외부의 환경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조직과 기업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면
그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는 조직과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래기업의 경쟁력 원천으로
유연성 대응성 민첩성 임파워먼트 지식 등 5가지 특성을 제시하고 있다.
외부의 환경에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할 때
기업과 개인은 ‘마지노선’ 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나 혹은 조직과 기업이 마지노선에서 살아남는 길은
외부의 변화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 남보다 먼저 변화를 선도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