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성공한 곳에서는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뚜르(Tours) 2011. 4. 5. 07:58

채택이 다시 말했다.
“지금의 임금이 충신을 신임하는 정도가 효공·도왕·구천 이상은 될 수 없소. 
그리고 당신이 지혜와 재능을 다하여 정치를 닦고 군대를 강하게 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며, 임금의 위엄이 세상에 가득 차 빛나는 이름이 길이 전하게 되는 점에서는 상군·오기·대부 종과 비교하여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내가 미치지 못하오.”
“지금의 임금이 충신을 가까이 하는 점에서 효공·도왕·구천에 미치지 못하고, 당신이 공적과 임금의 사랑을 받는 정도고 상군·오기·대부 종에 미치지 못하오. 
그런데 당신의 녹祿은 후厚하고 지위는 높으며 가진 재산도 세 사람보다 많소. 
만일 당신이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게 되면 아마 당신이 받는 화禍가 세 사람보다 작지 않을 것이오. 
나는 이 점을 매우 위태롭게 생각하는 바요.


속담에 이런 말이 있소. 
‘해도 중천에 뜨면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 
모든 일이 성盛하면 곧 쇠衰하게 되는 것이 변함없는 이치요. 
그러한 까닭에, ‘나라에 도가 행해지면 나아가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물러나 숨는다.’고 했소.
지금 당신은 남에게 받은 원한과 은혜를 거의 갚았소. 
그리고 원하던 바도 모두 성취했소. 
그러면서도 앞으로의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있는 듯 하오. 
물총새며 따오기, 코끼리만 해도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그럭저럭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는데도 먹이를 탐하는 욕심 때문에 잡혀 죽는다오. 
소진과 지백은 그 지혜가 출중出衆했지만 이익을 탐하는 데 마음이 빠져 있었기에 죽음을 당했소. 
일이 매우 잘 되어갈 때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 낮은 자리에 만족하거나 물러나 자중해야 하오.

상앙은 임금을 위해 법령을 밝게 하여 범죄를 없애고,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는 반드시 벌을 주었으며, 도량형을 통일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켰으며, 농사에 힘을 기울여, 식량을 창고 가득 쌓아 두게 만들었고 전쟁에 대한 훈련도 완벽하게 시켰소. 
그리하여 전쟁을 하면 영토가 넓어졌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라가 부유해졌으며, 이로 인해 진나라는 천하에 적수가 없었던 것이오. 
그런데도 그는 거열형에 처해졌소.

초나라는 땅이 사방 수천 리이고 군사가 백만에 이르는 큰 나라였으나, 백기는 겨우 수만의 군사로 초나라와 싸워 한 번 싸움에 언과 영의 땅을 점령하고, 두 번 싸움에 촉과 한을 병합하였소. 
또 조나라를 공격하여 장평 싸움에서 40여만의 군사를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소. 
혼자서 70여 개 성을 점령했지만 백기 또한 결국 두우에서 자살해야 했소.

오기는 초나라에서 법을 세워 대신들의 지나친 권세를 누르고 불필요한 관직을 없앴으며, 유세객들의 입을 막았고 붕당을 금하여 초나라의 정사政事를 똑바로 세워, 그 군대는 천하를 떨게하고 위세는 제후들을 복종시켰소. 
그러나 그의 공적이 이루어지자마자 결국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죽었소.

대부 종은 월왕 구천을 위해 망할 나라를 존속케 하고 치욕을 영광으로 만들어, 마침내 오나라를 무찌르고 천하의 패자가 되게 하였소. 
그러나 구천은 그를 배신하여 죽이고 말았소.

위에 말한 네 사람은 공을 이룬 다음 물러나지 못했기 때문에 화를 입게 되었으며, 따라서 펼 줄만 알고 굽힐 줄 모르며 나아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었소. 
이에 비해 범여는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어 초연히 세파世波를 피해 영원히 이름을 남겼소.

지금 당신께서 세운 공적은 하늘을 찌를 듯 하나, 이때 물러나지 않는다면 상앙·오기·대부 종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오.

이런 말이 있소. 
‘물을 거울로 하는 사람은 자기의 얼굴을 알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사람은 자기의 길흉吉凶을 안다!’ 
또 <서경書經>은 이렇게 말하고 있소. 
‘성공한 곳에서는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나는 당신이 이 기회에 재상의 자리를 내놓아 어진 사람에게 물려 준 다음, 바위 밑에 살며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오. 
그렇게 되면 백이와 같이 청렴한 이름을 얻어 영원히 응후로 부리며 자자손손 제후로 살게 될 것이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소? 
<주역>에 이르기를, ‘끝까지 올라간 용은 뉘우칠 날이 있다’고 하였소.”



범수가 채택의 말을 다 듣더니 드디어 결심한 듯 말했다.
“당신이 좋은 말씀을 해 주었소. 
‘욕심을 그칠 줄 모르면 그 욕심부린 것을 모두 잃게 되고, 
만족할 줄 모르면 그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고 하였소. 
다행히도 좋은 가르침을 주셨으니 삼가 따르겠소.”

며칠 뒤 범수는 조정에 들어가 왕에게 아뢰었다.
“신의 손님 중에 산동 지방에서 온 채택이라는 사람이 있사온데, 세상의 역사와 변화에 매우 정통하여 우리 나라의 정치를 맡기기에 충분하옵니다. 
신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으나 그만한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신도 그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 후 왕은 채택을 불러 면담한 뒤 크게 기뻐하여 그를 고문에 임명했다. 
이에 범수는 병을 핑계삼아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다. 
왕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으려 했으나 범수의 결심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사직을 허락하였다.

왕은 채택을 재상에 임명하고 동쪽으로 주나라 왕실을 병합하였다. 
채택이 재상에 오른 지 몇 달 만에 누군가가 그를 모함하였다. 
그러자 채택은 병을 핑계로 재상 자리를 내놓았다. 
그 후 그는 강성군에 봉해져 진나라에 10여 년간 머물러 살며 소왕·효문왕·장양왕을 섬기고 마지막에는 진시황까지 섬기게 되었다.

사마천을 이렇게 말했다.
<한비자는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범수와 채택은 그야말로 일류 논객論客이었다. 
그런데도 머리가 희어지도록 그들을 받아 주는 임금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은 계책이 서툴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유세한 나라들이 약소국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마침내 진나라에 들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에게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 
이들 두 사람 못지 않은 인물들도 많았건만 끝내 뜻을 펴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들 두 사람도 절박한 곤경에 처하지 않았던들 어떻게 분발하여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사마천 지음 <사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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