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참(讖)과 위(緯)

뚜르(Tours) 2012. 2. 16. 23:41

중국 전한(前漢) 말 평제(平帝)의 섭정이었던 안한공(安漢公) 왕망(王莽, BC45~AD23)은 권모술수의 대가였습니다. 평제를 독살하고 두 살 된 황족 유영을 옹립한 뒤 ‘안한공 망이 황제가 되라〔安漢公莽爲皇帝〕’는 붉은 글씨로 쓴 흰 돌을 만들어 하늘이 천명을 내렸다고 참언(讖言)을 퍼뜨렸습니다. 3년 만에 유영을 몰아내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신(新)나라 (AD8~23)를 건국한 것입니다.

 

  유방의 9세손 유수(劉秀, BC6~AD57)는 ‘묘금이 덕을 닦아 천자가 된다〔卯金修德爲 天子〕’는 위서(緯書)를 내걸고 거병하여 마침내 왕망을 타도했습니다. ‘묘금’은 유(劉)자를 구성하는 파자(破字)의 일부입니다. 왕망의 신왕조를 15년 만에 무너뜨리고 한조(漢朝)를 재건한 유수가 바로 후한(後漢)의 초대 황제 광무제(光武帝)입니다.

 

   참위(讖緯)란 미래의 길흉화복의 조짐이나 그에 관한 예언을 일컫는 말입니다. 원래 참은 미신적인 은어(隱語)에, 위는 유가(儒家) 경전의 해석에 바탕을 두고 미래를 예측하는 방편으로 진(秦)나라 때부터 쓰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두 가지가 권력투쟁에 활용되면서 참위로 합쳐졌 다고 합니다. 일식, 월식, 지진 따위로 사람의 운명을 예측하는 학설을 참위학이라 일컫습니다.

 

   당시 참위라는 미신적 행위가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 불안, 관료들의 부정부패, 과중한 세금, 부의 편중 등으로 사회가 불안해지고 민중봉기가 곳곳에서 일어나 백성들의 불신과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란기에 권력을 장악하려면 먼저 백성들에게 미래를 보장해 주겠다는 참위가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유(劉)자를 싫어했습니다. 당시 금도(金刀)라는 화폐가 있었는데, 금자와 도자가 劉자를 구성한다 하여 이름을 화천(貨泉)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백수진인(白水眞人)이 한실(漢室)을 복원한다’는 말을 퍼뜨렸습니다. ‘백수’를 합치면 천(泉)자가 되고 유수가 살던 지방의 이름이 백수였다고 합니다. 이른바 측자술(測字術)입니다. 〔金槿의 ‘한자의 역설’ 참조〕

 

   왕망은 참위로 황제가 되었으나 그도 참위로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광무제 유수는 정권을 잡은 후 참위를 금지했습니다. 그 후로 역대 정권에서 철저하게 단속하여 더 이상 유행되지 않았지만 측자술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1330~1374) 때 한양에 오얏나무가 무성해지자 어느 술사(術師)가 ‘이(李)가 성을 가진 사람이 한양에서 크게 일어날 징조’라고 예언했습니다. 왕은 대경실색하여 벌리사(伐李使:오얏나무를 베는 일꾼) 수십 명을 보내 한양의 오얏나무를 모조리 베어냈다고 합니다.

 

   ‘주초위왕(走肖爲王:조(趙)씨가 왕이 된다)’. 조선조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때 사림파(士林派)의 영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탄핵한 훈구파(勳舊派)의 문자참(文字讖)입니다. 남곤(南袞) 심정(沈貞)등이 대궐 안의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 참문을 새겨 벌레가 뜯어먹게 하여 이를 왕에게 참소했다고 합니다. 급진적 개혁을 서두르던 정암은 결국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조(世祖) 3년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한 남이(南怡, 1441~1468) 장군의 죽음은 더 애통합니다. 정적 유자광(柳子光) 등이 남이가 여진(女眞) 토벌 때 지은 시 속의 ‘사나이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오〔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 大丈夫〕’ 내용 중 未平國을 未得國으로 조작하여 역모로 몰았습니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고, 옛 발해(渤海) 영토의 일부의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여 28세에 병조판서에 오른 그는 정치적 모함과 참소로 주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참위는 종말론 같은 예언이나 정감록같은 비기(秘記)ㆍ비결(秘訣)로 많은 사람들을 불안과 미혹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동요 같은 참요(讖謠), 지록위마(指鹿爲馬)같은 요언(妖言) 처럼 개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경우도 있습니다. 1992년 15대 대통령 선거 때 고 정주영의 국민의 당 진영에서 “마침내 정도령이 현시했다”고 퍼뜨린 일도 있었습니다.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의 속도로도 혀로 내뱉은 말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던진 말은 도로 입속에 집어 넣을 수도, 없던 일로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책임은 화자 (話者)가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대정신은 기성 정치인이나 기존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강한 거부감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정치판은 자성(自省)의 빛보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허언으로 국민을 현혹 할는지, 국민은 또 무슨 요설에 부화뇌동하는 우중(愚衆)으로 전락할는지…. 흑룡의 해엔 그런 불상사는 없겠지요?

                      김홍묵의 <촌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