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老年)이란 어떤 것인가.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앞둔, 가련하기 짝이 없는 삶의 끄트머리인가. 노년에 대한 젊은 세대의 생각은 또 어떤가. ‘꼰대’인가, ‘노친네’인가, 아니면 ‘어르신’인가.
우리 한국에서 노년은 유난히 젊은 세대로부터 구박받는 삶이다. 선거 때가 되면 더욱 그러하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누군가 “서울 노친네들 설득하기 힘드네요. 그래서 아버지하고 어머니한테 25일부터 27일까지 수안보 온천 예약해 드렸습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글을 보고 “진짜 효자!!!”라고 답한 교수도 있었다. 한참 전에 누구는 “60대와 70대 이상은 투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노년은 그토록 불청객과 같은 존재인가. 하기야 노년을 고려장(高麗葬)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부모가 늙으면 산에 내다 버린 것이다. 지금은 다른가. 가슴 아픈 일이나 다르지 않다. 투표를 만류할 정도로 노년을 귀찮게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니 신(新)고려장 시대가 되지 않았나. 그러나 노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이를 먹다 보면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도 있는 법, 왜 노년의 풍요로움을 말할 수 없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2000년 전 로마의 키케로는 노년을 예찬(禮讚)하고 있다. “노년은 인간의 활동을 어렵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어떤 활동이 그렇다는 것인가. 아마도 젊음과 체력이 필요한 활동을 말하는 것일 테지. 그렇다면 몸은 비록 허약하지만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노년의 활동은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네. 조언과 권유로 나라를 수호한 많은 노인들이 있지 않은가. 뱃일을 한번 생각해 보게. 누구는 돛대에 오르고 누구는 배 안의 통로를 돌아다니며 또 누구는 용골에 괸 더러운 물을 퍼내고 있다네. 그런데 키잡이는 고물에 가만히 앉아 키를 잡고 있지. 허나 그렇다고 항해하는 데 있어 그가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젊은 선원들이 하는 일과는 다르나, 키잡이가 하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네. 큰 일은 민첩함이나 신체의 기민함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 및 판단력에 의해 이루어지곤 하지. 이런 자질들은 노년이 되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늘어나는 것이라네.”
키케로의 말은 이어진다. “자네들이 외국의 역사를 읽거나 듣고 싶어 한다면 가장 위대한 나라들이 젊은이들에 의해 와해되고 노인들에 의해 지탱되고 회복되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네. 한창때의 젊은이들은 경솔하기 마련이고 분별력은 늙어가면서 생기는 법이지.”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키케로의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시 한국의 노친네와 다를 바 없는 ‘꼰대의 잔소리’라고 생각하는가. 하기야 이 글을 썼을 때 키케로의 나이가 62세였으니, 분명 노인이었을 터. 그렇다면 “늙으니까 지혜가 있다”는 말에 대해 “젊으니까 분노가 있다”고 반론하고 싶은가. 하지만 부디 기억하라. 지금의 노인세대는 나라를 세우고 지키며 가꾸었다. 또 그대들을 낳아주고 품위 있게 키워주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세대다. 그 피와 땀이 그대들의 살과 뼈가 되었는데, 왜 노년을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는가.
젊은이들이여! 화가 나 있는가. 취업이 안 된다고, 대학등록금이 비싸다고 분노하고 있는가. 청춘이 가슴 설레는 말이 아니라 불안함과 좌절의 언어가 되었는가. 그대들의 고뇌에는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으나, 노년도 불안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젊음이 빠져나간 노인 얼굴의 주름살엔 고단함이 묻어 있지 않은가. 또 병마(病魔)와도 싸우고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의지력과 강인함으로 삶을 버텨내고 있다. 그러니 세대가 다르다고 하여 노년을 타박하지 말고 그 지혜를 배우는 것이 어떤가. 노년이란 오랜 항해 끝에 육지를 발견하고 마침내 항구에 들어선 아름다운 종결자와 같은 것, 결국 그대들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슬금슬금 들어서는 운명과 같은 길이 아니던가.
물론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닐 터, 왜 결함이 없겠는가. 흔히 노인들은 고집이 세고 화를 잘 내며 괴팍스럽기조차 하다. 또 인색함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성격상의 결함일 뿐, 노년의 결함은 아니다. 혹여 고집과 같은 결함을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다면, 노년의 지혜가 젊은이들에 의해 버림받을까 봐 초조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이여! 포도주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두 시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늙었다고 모든 사람이 초라해지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인생은 짧지만 명예롭고 건강하게 살기에는 충분하다”고 설파한 키케로의 말을 두고두고 음미해 봄이 어떤가.
박효종 /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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