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는 중국의 국공(國共)내전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아시아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손자병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인들이 ’손자병법’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미국의 군사전문가 사무엘 그리피스(Griffith)의 권위 있는 번역판이 나온 1963년부터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거나 ’손자병법’은 서구에 가장 널리 알려진 동양 병법서임에 틀림없다.
중국 손자병법연구회는 ’손자병법’의 최고 전략으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인 전승(全勝)전략을 꼽는다.
어떻게 싸우지도 않았는데 이길 수가 있다는 말일까?
일본에는 ’오륜서(五輪書)’라는 병법서를 쓴 전설적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가 있다.
그는 13세 때부터 60여 차례나 당대 최고의 무사들과 싸워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얼마 전 필자는 한 강의에서 무사시와 같은 사무라이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몇명만 자신 있게 손을 들기에 그렇다면 질 것 같으냐고 물었는데, 이번에도 몇 사람만 손을 들었다.
손을 안 든 분은 "우리는 비깁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여러분이라면 사무라이와 싸워 100%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우리가 칼보다 뛰어난 신무기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를 간단히, 그리고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자동권총 같은, 적이 모르는 신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싸우지 않고도 일본을 개항시킨 것은 사무라이들이 이전까지 상대해보지 못한 강력한 신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국으로서 전승전략을 잘 활용하는 예는 스위스다.
스위스는 북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서쪽으로는 프랑스에 접해 있다.
이웃 중 어느 나라라도 마음만 먹으면 몇 달 안에 스위스를 점령할 수 있다.
하지만 스위스는 땅굴을 파서 비상시 이들 국가를 향해 포탄과 전투기가 바로 날아갈 수 있게 해놓았다.
엄청난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점령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도 스위스를 침공하려다가 이 사실을 알고 포기했다고 한다.
스위스는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와 같은 정신으로 평화를 누리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와 싸우지 않고 이겨야 한다.
손자에 따르면 싸울 때는
첫째 상대의 전략을 치고,
둘째는 외교관계,
셋째는 군대,
넷째는 성읍의 순으로 치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 입장에서 셋째와 넷째는 현실성이 없다.
가능한 것은 앞의 두 가지인데, 이것이 바로 ’전승전략’의 길이다.
손자의 전승전략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은 전략 면에서 4대 강국을 앞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전략연구소와 대학이 있어야 한다.
’전승전략’의 핵심 내용은 한 어부의 이야기 속에 잘 드러난다.
어느 어부가 아침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나무에 매달린 뱀이 강가에 밀려나와 있는 물고기를 감아올리려 하는 것을 보았다.
다가가 보니 가물치 한 마리가 병든 것처럼 뒤집어져 있었다.
그런데 뱀이 다 감아놓으면 가물치가 몸을 휙 틀어서 빠져나왔다.
뱀은 조금 더 내려와서 다시 감았고 가물치는 또다시 빠져나왔다.
결국 뱀은 땅까지 내려와서 가물치를 감으려 했다.
그 순간 가물치는 순식간에 몸을 뒤집어 뱀을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어부는 고기잡이를 한 지 수십 년 만에 가물치한테서 크게 한 수 배웠다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어부는 무엇을 배웠는가?
첫째, 가물치는 자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둘째, 자신의 몸을 전혀 다치지 않았고,
셋째, 상대의 몸도 상하지 않았다.
넷째, 상대의 전략을 쳐서 싸우지 않고 이겼다.
이 네 가지가 바로 전승전략의 핵심이다.
한국에서 40대와 50대 초반의 직장인이나 사업가들은 여러 인간관계나 조직에서 다툼에 휘말리기 쉽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남과 별 다툼없이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간 이들이 많다.
손자孫子가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도, 이기지도 말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상사와의 싸움에서 백전백승하는 이는 직장을 잃고,
아내와의 싸움에서 백전백승하는 남편은 가정을 잃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어머니’들 중에도 전승전략을 실행하는 지혜로운 이가 많다.
남편, 자식, 이웃들과 필요 없는 싸움은 하지도 않고 굳이 이기지도 않는다.
이길 때도 상대가 받게 될 상처부터 생각한다.
일부러 져주기도 하고 심지어 패자敗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잘난 남편, 잘난 자식도 역경에 처하면 아내와 엄마의 품속을 찾게 된다.
’전승전략’은 남을 앞서는 능력과 남이 모르는 전략이 있어야 하지만,
지혜로운 어머니를 닮은 리더십과 넓은 마음씨를 그 바탕에 지니고 있어야 가능함을 명심하자.
송병락 /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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