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의 주장은 그럴듯하다.
생산에 참여한 노동자가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는데 과실은 왜 자본가가 다 따먹고
정작 주인공인 노동자는 일방적으로 주는 부스러기 노임을 받아야 하느냐 하는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항시 대변한다.
그래서 자본가가 노임이 싼지역으로 공장을 옮겨 다니거나 노동쟁의가 싫어 투자를 기피하면 결국은 저성장과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유럽은 그럴듯한 주장과 잘못된 결론의 가장 생생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청년실업이 50%에 달하고 그 와중에도 실업수당이 저임보다 높아 자발적 실업이 팽배한 유럽의 실상은 역설(逆說)의 극치다.
부자과세율을 높이면 부의 강제적 재분배로 빈부의 격차가 해소될 것 같지만
기업가 정신의 위축으로 자본유출이나 투자위축을 초래해 중장기적으로는 세수(稅收)가 오히려 줄어든다.
가계부채가 위협적이라고 은행이 이를 강제로 줄이려는 노력을 하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아 저축률은 늘어나도 소비가 줄어 경기는 더욱 침체에 빠져든다.
정치적 포플리즘은 언제나 역설의 함정에 걸려들게 되어있다.
보수여당 대권 주자의 경제민주화 슬로건은 30-40대의 입맛을 다소 당길 수는 있어도
기업가 정신의 저하와 세계불황에서 그나마 버팀목이 되어왔던 대기업의 투자기피와 경쟁력 상실은 불보듯 뻔하다.
청춘콘서트로 마치 소통의 달인처럼 보이는 어느 후보의 소통, 나눔, 햇볕의 3대 테마는
가장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앞으로의 5년을 혼돈의 극치로 이끌 수 있다.
지금은 대중의 소리에 귀 귀울이고 대중의 눈높이로 정책을 입안하고 민족적 동질성으로 대북정책을 이끌어야 할 것 같지만
혼란이 가중되는 시대에는 뚜렷한 비젼과 올바른 신념으로 국민을 이끌어가는 국가적 지도력이 오히려 더욱 절실한 때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역설에 대해 대중은 냉철하게 대처하기 보다는 오히려 휩쓸리는 경향이 짙다.
군중은 부화뇌동하여 흥분하기 쉽고 이점을 잘 간파하는 자가 바로 정치인 이므로 역설은 무방비로 회자된다.
그리고 역설의 피해는 언제나 처럼 대중의 몫이다.
김광영 경영학 박사 / 맥스경영컨설팅(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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