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서 두 가정이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 사용량은 동일하지만 순이네는 연 3,000만 원을 벌고, 돌이네는 연 2,0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하자.
이런 경우 우물 관리 비용은 어떻게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소득 수준에 따라 각각 5퍼센트씩 150만 원과 100만원을 내는 것이 공평한가?
게다가 순이네의 고소득이 많은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고, 돌이네는 저소득이 신체적 장애 때문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결코 가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말 많은 의료보험료를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하고,
소득이나 사치품에 대해 어떻게 과세할 것인가 등이 모두 이런 종류의 논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람직하고 옳은 방향인가?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정답은 찾기 힘들다.
같은 정책을 놓고도 서로 주장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답이 둘이 될 수도, 셋일 수도 있는 것은 자연과학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물리학의 원리는 한 번 증명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경제현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시각에서, 어떤 가치 기준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부분적으로는 옳으나 전체적으로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무엇을 더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농부의 노력과 기후 덕택에 풍년이 든 경우를 생각해보자.
여지없이 농산물 파동이 나고,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가격이 폭락한다.
농부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수확량이 많은 것이 좋지만, 풍년이 되면 전체 농가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될 수 있다.
증산을 독려한 정책이 생산자보다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어 수혜자와 피해자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 개별 근로자는 낮은 임금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그러나 근로 조건이 좋아지므로 일하려는 사람은 많아지고, 고용하겠다는 기업은 줄어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실업률은 높아진다.
누가 피해자인가?
모성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출산여성을 많이 보호할수록 여성근로자의 공급은 늘어난다.
그러나 기업의 여성근로자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겠는가.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더 보호받지만, 여성의 취업난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누구를 먼저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전체와 부분이 구성의 모순을 가져오는 사례이다.
따라서 무엇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정책 선택은 달라진다.
순수하게 물의 사용량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물값은 당연히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면 뭐라 하겠는가.
그런 주장에는 이론적인 정답을 찾을 수 없다.
경제현상에 대해 ‘무엇이 중요하므로’ ,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접근하면
그것은 규범적 분석이 된다.
이미 어떤 것이 좋다는 자신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반면 “있는 현상을 그대로”보는 것은 실증적 접근이라고 한다.
경제 이론은 실증적 분석에 바탕을 두어야만 가치에서 해방된 이론을 도출할 수 있다.
가치가 개입되면 정치 논리와 국민 정서 등 비경제적 요인을 모두 감안하게 되기 때문에
논리적 해답을 얻기가 매우 힘들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팔을 하나만 가진 경제학자”를 찾았다고 한다.
논의되는 정책마다 경제학자들이 “다른 한편으로는”하고 상반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는 두 팔이 필요하다.
부분적으로는 옳지만, 전체적으로 달라지는 경제현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 논리에 따른 가치 판단을 요구 하는 정책에는 항상 다른 팔이 필요하다.
그래야 또 하나의 팔로는 나무 뒤에 숨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정갑영 지음 <나무 뒤에 숨은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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