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독불장군 SONY, 기술이 아니라 연합군이 없어 몰락했다

뚜르(Tours) 2013. 1. 1. 20:33

한때 세계 최고 전자(電子)기업으로 명성을 날리던 소니의 추락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2002년 삼성전자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물려주면서 주저앉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밑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10년 전과 비교할 때 소니의 시가총액은 당시의 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지난해에는 5200억엔(약 6조 8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투기등급(정크본드)으로 신용등급까지 강등됐다.
적자를 견디다 못한 소니가 파산한다면 일본 경제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줄 것이다.


소니가 왜 몰락했을까.
소니는 지금도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더 이상 소니의 제품을 찾지 않는다.
이유는 소니가 기술만을 중시하고 소비자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VCR의 경우를 회상해 보자.
VCR이 처음 개발됐던 당시, 소니는 베타 방식을, JVC 같은 다른 기업들은 VHS 방식의 표준을 사용했다.
기술적으로는 베타방식이 훨씬 우위였기에 소니는 독자적으로 베타방식을 밀었다.
그러나 VHS 방식을 택한 다른 기업들은 기술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을 개방하며 많은 연합군을 만들었다.


VCR 제작기술이 없는 미국·유럽·한국 등의 전자업체에 기술을 제공해 VHS 방식의 VTR을 생산토록 했다.
그리고 가정에서 VCR을 직접 볼 콘텐츠를 제공하는 메이저 영화사들에도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그 결과 유명 영화들이 속속 VHS 방식의 비디오로 제작·발매됐다.


일이 이렇게 되자 소비자들은 값이 비싼 소니 VCR을 구입할 이유가 없어졌다.
소니가 아무리 자기들의 기술이 월등히 우수하다고 광고를 해도
VCR을 통해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VHS 방식이었던 탓이다.
소니는 결국 몇 년 만에 백기를 들고 VHS 방식으로 따라갔고, VCR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밀려났다.


소니가 여기서 큰 교훈을 얻었다면 오늘날 소니의 몰락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소니는 같은 실패를 되풀이했다.
음반 시장에서의 소니가 개발한 미니 디스크 대(對) MP3의 경쟁,
영화 시장에서의 소니가 개발한 블루레이 대 인터넷 다운로드의 경쟁,
전자책(e북) 시장에서의 소니가 개발한 리브리에 대 아마존의 킨들 사이의 경쟁 등에서
소니는 모두 자기 기술이 더 우수하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기술을 독점하며 연합군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계산에서였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소니는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오랜 기간 첨단기술들을 개발했지만 계속 시장에서 외면당했고 몰락을 자초했다.


이런 사례들은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서는, 최고 기술 보유보다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또 하드웨어가 성공하려면 관련 소프트웨어나 콘텐츠가 다양해야 한다는 점도 보여준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우수해도 관련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소비자들이 그 하드웨어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기술적으로 뒤진 후발주자들이 종종 선발주자를 제치고 성공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단점을 꿰뚫고 다른 하드웨어 업체나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을 자기편, 즉 연합군으로 끌어들인 덕분이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기술이나 금전적 인센티브 제공 같은 양보가 있었을 것이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SW 개발업체들에 개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소니는 기술만 믿고 아무에게도 양보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폐쇄적으로 담을 쌓고 자기 기술을 밀고 나갔다.
’내 기술이 최고’이니 ’소비자들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우리를 알아줄 것’이라는 착각이 소니의 패퇴를 가져온 것이다.
사실 이런 착각은 우리나라의 많은 벤처기업도 종종 범하고 있다.


이처럼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 모든 것을 다 하겠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반려자나 친구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이 훨씬 더 윤택하다.
사회생활에서도 좋은 친구가 많은 사람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성공한 배경에도, 싸이 혼자가 아니라 작사·작곡·안무·홍보 등의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의 협업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최종학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