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열세를 뒤집으려면 총사령관이 앞으로 나서라

뚜르(Tours) 2012. 12. 31. 08:26

LG전자가 모처럼 활짝 웃었다.
미국 진출 한 달도 안 된 LG의 옵티머스G가 갤럭시S3와 아이폰5를 누르고 제품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지난달 23일 ’컨슈머 리포트’가 발표한 것이다. 구본무 회장의 직접 진두지휘 아래 계열사 임직원이 총출동해 구슬땀을 흘린 덕분이다.
’회장님폰’이란 별명이 이를 방증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열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반드시 총사령관의 ’친정(親征)’이 전제돼야 한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복귀를 계기로 불과 2년 만에 스마트폰 분야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게 이를 보여준다.
당시 그는 남보다 먼저 출근해 삼성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임직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아이폰의 아성을 깨뜨린 배경이다.
갤럭시가 ’회장님폰’의 원조인 셈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자신이 쓴 ’중국혁명전쟁의 전략문제’란 군사논문에서 ’엎어치기’에 성공하는 비책을 이렇게 제시했다.

"중국의 전쟁사를 개관하면 약자가 병력을 결집해 승리를 거둔 사례를 무수히 접할 수 있다.
유방과 항우가 자웅을 겨룬 성고(成皐)대전,
원소와 조조가 충돌한 관도(官渡)대전,
손권과 조조가 격돌한 적벽(赤壁)대전,
동진의 총사령관 사현과 전진의 부견이 맞붙은 비수(?G肥水)대전 등이 그렇다.
모두 ’후발제인(後發制人)’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후발제인’은 열세에 있는 쪽이 한 발 물러났다가 힘을 결집해 반격함으로써 엎어치기에 성공하는 계책을 말한다.
순자가 쓴 ’의병(議兵)’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적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적보다 나중에 움직이되 먼저 목적지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강적을 만나면 일단 정면 대결을 피한 뒤 적의 예기(銳氣)가 무뎌지고 전열이 흐트러졌을 때
병력을 총결집해 기습공격을 가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전국책의 ’제책’에 이를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천리마라도 오래 달려 피로해지면 평범한 말도 그보다 빨리 달릴 수 있고,
천하의 용사도 싸움에 지쳐 힘이 빠지면 평범한 여인도 그를 이길 수 있다!"

’후발제인’과 보완관계를 이루는 게 ’선발제인(先發制人)’이다.
위기상황에서 먼저 움직여 주도권을 쥐는 것을 말한다.
당태종 이세민이 ’현무문(玄武門)의 변(變)’을 일으켜 태자 이건성 세력을 일거에 쓸어낸 게 그 전형이다.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도 똑같은 수법으로 정도전 세력을 제압한 바 있다.



그러나 상대가 압도적으로 강할 때는 ’선발제인’이 통하지 않는다.
그때는 ’후발제인’ 계책을 써야 한다.
이 계책의 핵심 동력은 2가지다.

첫째, 총사령관이 직접 전쟁터로 나가 북채를 취고 북을 울리며 장병들을 고취해야 한다.
둘째, 힘을 비축해 놓았다가 적이 빈틈을 보일 때 일거에 비축된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반드시 이 두 가지를 겸해야 목표를 달성하며 주효할 수 있다.

제갈량의 첫 북벌 때 벌어진 가정(街亭)전투가 그 반면교사에 해당한다.
생전에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읽은 마오쩌둥은 자치통감의 해당 대목을 읽다가 이런 주석을 달아 놓았다.

"제갈량은 가정전투 때 친히 전투에 임했어야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당시 제갈량이 병력을 결집해 싸워야 한다는 위연의 건의를 무시한 채
조자룡에게 기곡, 마속에게 가정을 접수토록 한 뒤 자신은 기산(祁山)으로 진격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제갈량은 병력을 세군데로 분산하고 직접 가정전투에 나서지 않는 바람에 다 이긴 싸움을 놓쳤다.
그런 점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제갈량의 실책을 호도한 술수에 불과하다.
남북조 때의 역사가 배송지(裴松之)는 삼국지를 주석하면서
"대군이 기산과 기곡에 포진해 있었고 모두 적보다 많았다.
그러나 적을 깨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패하고 말았다.
이는 병력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때 ’한 사람’은 바로 제갈량을 말한다.
병력과 힘을 하나로 집결하지 못한 점을 뒤늦게 비판한 것이다.
아이폰의 무차별 공세 당시 애플은 스마트폰의 절대 강자였다.
삼성과 LG로서는 ’후발제인’이 간절했다.
삼성은 이를 곧바로 실행해 성공을 거둔 반면,
LG는 주춤거리는 바람에 대만 HTC에게까지 밀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애플이 휴대폰의 최강자인 노키아를 비롯해 삼성과 LG 등을 잇달아 격파한 것도
총사령관인 스티브 잡스가 진두지휘하며 스마트폰에 힘을 집중시킨 덕분이다.
LG는 애플과 삼성을 뒤늦게 흉내 내 이제 재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경험은 ’민주경영’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오너경영’을 배격하는 한국 경제와 정치권의 거센 풍조에 대한 일대 경고나 다름없다.

세계경제 침체와 내수시장 위축 같은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만 탓하면 앞날은 없다.
위기상황일수록 기발하고 담대한 계책을 짜내야 한다.
상황이 급박한데도 총수가 ’민주경영’을 한답시고
계열사 CEO에게 모든 일을 맡긴 채 전황이나 보고받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한반도 주변이 온통 강대국인 상황에서 ’경제민주화’ 목소리만 크게 들리기에 ’선발제인’과 ’후발제인’ 계책이 더욱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신동준 박사 / 21세기정경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