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오늘의 묵상(연중 제8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자연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남기시고 사람의 모든 생각을 다 알고 계시는 창조주이시다. 자연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어 그분의 업적에서 아름답고 찬란함을 느끼게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를 떠나 예루 살렘으로 가시던 길에 바르티메오라는 눈먼 거지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찬란한 태양은 만물을 내려다보고,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에게조차, 당신의 온갖 놀라운 업적을 묘사 할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 놀라운 업적을 세우시어, 만 물을 당신 영광 안에 굳게 자리 잡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깊은 바다와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그 술책을 꿰뚫어 보신다. 사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온갖 통찰력을 갖추시고, 시대의 표징을 살피 신다. 그분께서는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을 알려 주시고, 숨겨진 일들의 자취 를 드러내 보이신다.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 마디도 숨길 수 없다.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 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 언자도 필요 없다.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이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영원히 지속되며, 그분께서 필요하실 때는 만물이 그분께 순종한다. 만물은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완전 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좋은 점을 돋보이게 하니, 누가 그 분의 영광을 보면서 싫증을 느끼겠는가?(집회 42,15-25)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 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 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 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 46ㄴ-52) 오늘의 묵상 벨기에 출신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라는 동화극이 있습니다. 주인공 틸틸과 미틸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실망한 채로 집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두 남매 는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집에 있던 새를 다시 보니, 그 새가 바로 파랑새였 던 것입니다. 이 남매가 키우던 새가 본디 파랑새가 아니었는데, 긴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파랑새로 바뀌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파랑새였습니다. 여행을 다 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이 키우던 새가 파랑새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 던 것입니다. 곧 그들의 여행이 자신들의 새를 '다시 볼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눈먼 거지를 고쳐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는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 그는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의 삶과 주위의 사람들에 대하여 제대로 바라 보고 있습니까? 자신의 삶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서 긍정적인 부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아 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 속에 기쁨이 전혀 없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긍 정적인 부분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눈먼 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위에 널려 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행운만을 좇다 보니, 늘 곁에 있 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주 하느님, 주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읆을 깨닫고, 거룩한 은총의 힘으로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3. 5. 30. Martinus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Martinus' opinion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Good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 1일, 오늘의 묵상(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0) 2013.05.31 5월 31일, 오늘의 묵상(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0) 2013.05.31 5월 29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8주간 수요일) (0) 2013.05.28 5월 28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8주간 화요일) (0) 2013.05.27 5월 27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8주간 월요일) (0) 2013.05.26 티스토리툴바
오늘의 묵상(연중 제8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자연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남기시고 사람의 모든 생각을 다 알고 계시는 창조주이시다. 자연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어 그분의 업적에서 아름답고 찬란함을 느끼게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를 떠나 예루 살렘으로 가시던 길에 바르티메오라는 눈먼 거지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찬란한 태양은 만물을 내려다보고,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에게조차, 당신의 온갖 놀라운 업적을 묘사 할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 놀라운 업적을 세우시어, 만 물을 당신 영광 안에 굳게 자리 잡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깊은 바다와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그 술책을 꿰뚫어 보신다. 사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온갖 통찰력을 갖추시고, 시대의 표징을 살피 신다. 그분께서는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을 알려 주시고, 숨겨진 일들의 자취 를 드러내 보이신다.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 마디도 숨길 수 없다.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 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 언자도 필요 없다.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이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영원히 지속되며, 그분께서 필요하실 때는 만물이 그분께 순종한다. 만물은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완전 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좋은 점을 돋보이게 하니, 누가 그 분의 영광을 보면서 싫증을 느끼겠는가?(집회 42,15-25)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 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 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 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 46ㄴ-52) 오늘의 묵상 벨기에 출신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라는 동화극이 있습니다. 주인공 틸틸과 미틸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실망한 채로 집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두 남매 는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집에 있던 새를 다시 보니, 그 새가 바로 파랑새였 던 것입니다. 이 남매가 키우던 새가 본디 파랑새가 아니었는데, 긴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파랑새로 바뀌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파랑새였습니다. 여행을 다 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이 키우던 새가 파랑새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 던 것입니다. 곧 그들의 여행이 자신들의 새를 '다시 볼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눈먼 거지를 고쳐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는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 그는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의 삶과 주위의 사람들에 대하여 제대로 바라 보고 있습니까? 자신의 삶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서 긍정적인 부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아 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 속에 기쁨이 전혀 없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긍 정적인 부분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눈먼 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위에 널려 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행운만을 좇다 보니, 늘 곁에 있 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주 하느님, 주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읆을 깨닫고, 거룩한 은총의 힘으로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3. 5. 30.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