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이라고 한글로만 쓰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같은 고문이라도 옛 글이라면 古文이고,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라면 때리면서 묻는다는 뜻을 가진 拷問이다.
내가 오늘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일의 의논 상대가 될 수 있는 전문가’를 뜻하는 顧問이다.
여기에 나온 顧라는 글자에는 돌아보다, 지난날을 생각하다, 이런 뜻이 있다.
맞다.
고문은 지난날을 생각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정년이 닥친다.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낫다.
정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그 조직 내의 논리로 인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처지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정년이든 아니든 그렇게 물러난 사람에게 붙여주는 직함이 대개 고문이다.
고문은 현역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현역이 아닌 것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고문이라면 현역 근무자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실제로 의견을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 해도 몸담아온 조직이나 기관의 일에 무관할 수 없고 경영상의 문제를 등한시해서도 안 된다.
고문은 상임이든 비상임이든 몸을 반은 뭍에, 반은 물에 걸치고 사는 동물처럼 처신을 잘 해야 한다.
사무실이 있는 경우 눈치 없이 매일 나가서 직원들을 귀찮게 하거나 주책없이 일에 간섭하거나 그곳의 자원을 축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아주 안 나가면 사무실을 유지해줄 이유가 없어지니 출근도 알아서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잘못 쓰는 단어가 있다.
보통 자문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자문이란 어떤 일에 대해서 의견을 묻는 일이므로 자문을 받는다고 할 게 아니라 자문한다고 써야 한다.
자문을 구한다는 말도 틀렸다.
그것도 자문한다고 써야 한다.
양해나 용서, 조언을 얻으려 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구한다고 써야겠지.
어쨌든 고문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자리다.
처신을 자칫 잘못하면 곤욕을 치를 수 있다.
그래서 고문(顧問)은 고문(拷問)을 당하는 자리라는 농담도 나온다.
경영주나 기관장의 눈치를 보아가며 품위와 체면을 지키려 노력하면서 적절히 비위를 맞추는 능력, 고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거다.
그러니 힘들고 피곤하지 않겠는가.
어떤 고문에게 명예직 운운했더니 그는 “명예직요? 명예직이 아니라 멍에직이지요.” 라고 대답해서 함께 웃은 일이 있다.
세상일이란 다 그런 것이다.
때가 되면 물러나는 거고, 종전과 달리 나름대로 어려운 처지에서 잘 처신해야 한다.
원래 삶 자체가 멍에 아니던가?
그걸 억지로 거부하거나 벗어서 팽개치려 하지 말고 잘 슬기롭게 적응하도록 노력하고, 나 자신과 남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면서 살아가야 하리라.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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