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오늘의 묵상(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며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루카 1,39-56 참조)을 기념하는 날이다. 5월 31일을 축일로 정한 것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기념하기 위해서다.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은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이러한 이웃 사랑은 위대한 두 인물이 만나는 자리가된다. 말씀의 초대 스바니아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재건을 노래한다. 이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에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원수들을 쫓아내시며 백성 한가운데에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때문에 기뻐하시고 사랑으로 그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제1독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자 엘리사벳 태 안의 요한이 뛰놀았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찬미가를 노래한다. 하느님 계약의 약속이 비천 한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 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 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 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축제의 날인 양 그렇 게 하시리라. 나는 너에게서 불행을 치워 버려, 네가 모욕을 짊어지지 않게 하 리라.(스바 3,14-18) 복음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 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 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 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 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 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 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 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 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 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루카 1,39-56) 오늘의 묵상 오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한 해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제대로 지내지 못한 채 보내는 아쉬움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부족해 이렇게 아쉬운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끔 산책도 했고, 동네 집 들 담장과 아파트 단지 화단만 해도 꽃이 만발하는 시절이니 꽃구경을 하지 못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햇볕도 마음껏 즐겼고, 공원에서 열리는 이런저런 축제도 둘러보았습니다. 모임이 많은 시기였으니 지인들과 만나는 반가운 자 리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좋은 것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거나 흘러가 버린 듯한 씁쓸함을 이 화창한 날씨에 떨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 스스로도 궁금합니다. 사람 마음이란 본디 아름다운 시기나 좋았던 때가 지나갈 때 감사하기보다는 잡아 두지 못한 안타까움이 앞서는 법인가요? 아니면 이 좋은 때에 저만 행복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행복한 시간에 굳이 상실의 그림자를 보는 것일까요? 행복한 순간이 흘러가야 또 다른 행복한 순간이 오는 것이 이치일 텐데, 그걸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이러한 생각에 잠시 머물다가 구약 성경 「코헬렛」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 다.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7,14). 현자가 이렇게 권고하는 것을 보 니 좋은 것을 그늘진 마음 없이 즐기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기뻐할 줄 몰라서, 행복한 순간에도 그것을 잃을지 두려워하 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들에게 오늘 복음은 더없는 치유제가 될 것입니다. 저도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봄날의 난데없는 서글픈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그 만남에 초대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유다 시골의 소박한 두 여인이 얼마나 기쁨과 감사에 넘쳐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헤아려 보십시오. 이제, 두 사람의 만남의 순간에 깊이 들어가 봅니다. 화창한 봄날에 느끼는 기분 같은 기쁨이 어떻게 두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간직되는지를 잠시나마 묵상해 보십시 오. 좋았던 순간에 매달린 채 사라지는 것을 미리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른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길이 어떤 것인지는 한번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을 그 길에 비추어 보십시오. 이 오월의 마지막 날, 아름다운 꽃을 가만히 바라보며 산책하는 우리의 발걸 음이 엘리사벳에게 다가가시는 성모님의 발걸음과 닮기를 바랄 뿐입니다. (매일미사에서 옮겨 옴)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를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도록 이끄셨으니, 저희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 살며, 마리아와 함께 언제나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5. 31. Martinus 대영광송 /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