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동계올림픽에서는 김연아·이상화 등 여성 선수들 활약이 두드러졌다. 남자 선수들은 간신히 체면을 세우는 데 그쳤다. 골프에서도 여자 선수들 활약이 눈부시다. 심지어 어느 사관학교에서는 여생도들이 대통령상을 연속 수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적 평가 방법을 바꾸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이렇게 한국 여성 인력의 우수성이 속속 입증되면서 혹시 이들이 한국 기업에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비밀 병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과연 실제로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한다면 기업의 경영 성과를 높일 수 있을까?
통계를 보면 한국 기업들이 이 비밀 병기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속한다. 또한 임금, 근무 환경, 고용 안정성과 같은 고용의 질에서도 남성보다 떨어지고 있다.
더욱이 부장이나 차장급 여성 경영 인력의 활용도는 더욱 낮다.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2013년 한국의 상장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이 여성이고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율도 24%에 이르지만, 팀장·부장 등 업무를 지휘·감독하는 관리직 여성 비율은 7%밖에 안 된다. 심지어 여성 관리자가 단 1명도 없는 기업이 절반을 넘는다. 여성 임원 비율은 2% 정도로 매우 낮다.
그나마 대기업은 출산휴가나 사내 탁아시설이 잘 되어 있고, 승진의 기회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나,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뿌리 깊은 남성 선호 사상과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는 여성 인력의 활용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던 시걸 교수는 여성 인력이 한국 경제의 비밀 병기라는 가설에 매우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한국노동연구원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한국 기업들과 한국에서 조업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여성 인력 활용의 효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가 특히 다국적 기업의 한국 자회사에 주목한 것은, 그들이 한국 기업들에 비해 유능한 현지 인력을 유치하는 데 근본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삼성, 현대, LG와 같은 대기업들은 그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몰려오는 인재 중에서 골라 뽑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기업들은 그동안 남성 인력을 선호해 왔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들은 대기업 시장에서 ’밀려난’ 뛰어난 여성 인력을 유치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성 인력에 대한 차별이 심한 일본계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 자회사들조차도 일본 본사보다 여성 인력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즉, 그동안 한국에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 중 하나는, 유능하지만 차별받고 있었던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한 것이었다.
시걸 교수가 여성 경영 인력의 활용도가 경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 분석해 본 결과, 한국 기업들이 부장급 여성 인력을 10% 늘리면 총자산수익률(ROA)이 1%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위직에 있는 여성 인력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반드시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효과는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단순히 여성을 더 많이 고용한다고 해서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능한 여성 인력을 고위 경영자로 발탁해 전략적 의사 결정을 담당케 하는 것으로부터 기업의 경쟁력이 발생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유능한 경영자의 자질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희소한 자원이므로, 이를 육성하고 보호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 기업들은 단순히 전체 직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려 하기보다 오히려 고위 관리직까지 오를 수 있는 유능한 여성 직원을 파악하고, 보호하며, 육성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숨은 비밀 병기의 덕을 한국에 있는 다국적 기업들만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쉽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이를 잘 활용한다면 더욱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장세진 교수의 ’전략&인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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