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례(성녀 마르타 기념일)
마르타 성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타니아
에서 살았다. 나흘이나 무덤에 묻혀 있던 라자로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머무르실 때 언니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으나 동생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 제 동
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
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주님의 이 말씀에 따라 마르
타 성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마리아 성녀는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
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가르침이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
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에게서 완성된다(제1독서). 마르타는 예수
님께 마지막 날에 오빠 라자로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믿음을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마
르타에게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당신
을 믿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임을 믿는지 물으신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메시
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
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
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
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
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
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
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
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7-16)
복음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
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
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
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19-27)
오늘의 묵상
오늘 마르타 성녀의 기념일에는 라자로의 부활에 관한 요한 복음만이 아니라 예수
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를 방문하시는 루카 복음의 장면(10,38
-42)도 봉독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주님의 시중드는 데 분주한 반면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만 듣고있는 모습을 봅니다. 마르타
는 예수님께 마리아에게 언니를 도우라고 일러 주십사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이며,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학생 시절, 중세 독일의 위대한 신비주의 사상가였던 도미니코회 사제 에크하르
트의 『독일어 설교』에서 루카 복음의 이 대목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받은 인
상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주석은 마르타로 상징되는 활동
적 삶보다 마리아가 대표하는 관상 생활의 우위성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마르타를 삶의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깊이 성
숙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관상적 사랑을 잘 알고 있으며, 이제 마음에서 우러나와
주님께 봉사하는 것으로 그 사랑의 열매를 보여줍니다. 그 반면, 마리아는 이제 막
영성적 기쁨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아직은 봉사를 통하여 사랑의 결실을맺는 단계
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마르타가 주님께 한 부탁은 동생에 대한 질투나 불평
이 아니라 마리아가 혹시 영적인 위로에만 집착한 나머지 '섬기는 삶'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하는 진심 어린 염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마리아
에 관하여 하신 말씀 또한 마르타에 대한 힐난이 아니라 마리아가 마르타의 바람대로
활동과 관상을 통합하는 길을 잘 가리라는 믿음을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르타 성녀를 기억하면서 저도 주님께서 주신 봉사와 기도의 보화를 잘 간직하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힘쓰리라 다짐해 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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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께서 복된 마르타의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형제들을 그리스도로 섬기게 하시어,
마침내 천상 낙원에 들어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7. 29.
Mar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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