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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뚜르(Tours) 2014. 11. 5. 22:31

 

오늘의 묵상(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회적 배경이나 권리, 인간적 열성 등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분을 아는 지식만이 지고한 가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온 세리들과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는 이러한 예수님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과 은전의 비유로 하느님의 자비를 깨우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 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베야민 지파 출신이 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 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 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 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필리 3,3-8ㄱ) 복음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 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 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 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 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 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 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 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10) 오늘의 묵상 루카 복음 15장은 너무나 잘 알려진 세 가지 비유로 짜여 있습니다. '되찾은 양, 되찾은 은전, 되찾은 아들'이라는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 기뻐한다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비유들은 하느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 시며 우리를 얼마나 간절히 찾고 기다리시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첫 번째 비유인 되찾은 양과 은전의 비유와 함께 15장 전체의 도입 부분을 듣습니다. 우리는 이 도입 부분에 머물러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 다. 주님의 말씀을 얼머나 진심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지 성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스스 로를 죄인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갈망하는 이들의 자세와 바리사이 들이나 율법 학자들의 오만함은 철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스스로를 의로운 자로 여깁니다. 그들의 교만은 죄인들과 격의 없이 어룰리는 예수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 한 태도는 주님과 '식탁 공동체'에 함께하지 못할뿐더러 그분과의 메워질 수 없는 간격을 스스로 만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불평'은 자신들 또한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야 할 나약한 사람임을 깨닫 지 못하는 더 큰 어리석음을 드러내며,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모르는 완고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가까이하시는 모습에 분노를 느낀 이유는, '잃은 양'을 도로 찾거나 영혼의 '환자'가 치유되는 것을 보시 며 느끼시는 하느님의 '기쁨'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주님의 자비를 느끼고, 또한 이웃이 그분의 자비를 입은 것을 보며 참된 기쁨을 느끼는 이만이 진정 주님과 한 공동체를 이룹니다. 인자하신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그려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교황 권고 「목음의 기쁨」을 시작하시며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복 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 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 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매일미사에서 옮겨 적음) ---------------------------------------------------------------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 백성의 정성 어린 간구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11. 6.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