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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뚜르(Tours) 2014. 11. 14. 06:09

 

오늘의 묵상(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말씀의 초대 요한 2서의 필자는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전 한다. 진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리신 사랑의 계명에 따라 생활하 는 것을 뜻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에 나타날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날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이는 목숨을 잃고, 오 히려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복음). 제1독서 선택받은 부인이여,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 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 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 스도의 적'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 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2요한 4-9)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 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 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 억하여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 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 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루카 17,26-37)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에서 묵시적이고도 종말론적인 담화들이 모여 있는 첫 번째 대목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며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한 묵시 문학적 표현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와 존재 방식에 대해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어제 복음의 정신에 따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종말론적 긴장'을 지니되, 이적을 동반하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가시적인 현상으로 하느님 나 라를 이해하는 경향에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선언하 셨습니다. 이는 그 때와 장소에 대한 우리의 철저한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사람의 아들의 때'에 관한 오늘의 복음에서 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기본 범주인 때와 장소, 곧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는 크게 물리적 차원과 관념적 차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 차원과 관념적 차원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이 실제로 체험하는, 하느님께서 '위에서' 개입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차원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분명히 '실재'로서 현존하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자리로서의 공간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를 우리는 '사건'으로서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현존은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이 세상 에 매이지 않는 사건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사람의 아들의 때'를 기다리는 이 는 그 나라의 가치를 철저하게 실천하며 세상의 삶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참된 종말론적 윤리는 결코 세상에서 도피하거나 맹목적 두려움에 따른 포기를 뜻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자리와 일상이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는 때 와 장소가 되도록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뜻합니다. 우리 그리 스도인은 이러한 종말론적 차원을 늘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매일미 사에서 옮겨 적음) ---------------------------------------------------------------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저희가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11. 14. Mar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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